'선택과 집중' 사업개편은 선택 아닌 필수
기업은 고군분투…정부·정치권은 뒷짐

서정환 산업부 차장
[편집국에서] '半샷법'된 기업활력제고법, 이대로 둘 건가

3년여 전이다. 가와무라 다카시 전 히타치 회장을 일본 도쿄 본사에서 만났다. 위기의 히타치호(號)를 구한 ‘최후의 남자’(그의 별명)다. 그는 손수 가져온 자료를 보여주며 최고경영자(CEO)로 지낸 5년(2009~2014년)간의 히타치 개혁을 설파했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인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히타치는 7800억엔(당시 약 10조2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였다.

가와무라 회장 취임 후 히타치는 대변혁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업재편을 위해 5년간 30여 건에 달하는 인수합병(M&A)을 했다. 연간 600억엔의 영업이익을 내던 알짜 자회사(히타치글로벌스토리지테크놀로지)를 매각하고 비주력이던 화력발전 사업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업부문과 통합했다. 그는 “당장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선택의 기준이었다”고 했다. 히타치는 전력, 철도 등 인프라 관련 업체를 인수하며 B2B(기업 간 거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2013~2015회계연도에는 3년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 가와무라 전 회장을 만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LG그룹이 히타치를 ‘열공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LG그룹은 최근 ‘한국의 히타치’로 변신 중이다. 계열사들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LG전자는 연료전지 자회사인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하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일반 조명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을 접을 예정이다. LG이노텍과 LG화학도 비주력 사업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대신 LG화학은 지난 4월 미국 듀폰으로부터 ‘솔루블 OLED’ 재료기술을 인수했다. 이 같은 사업재편에는 구광모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G뿐 아니다. 삼성 SK CJ 등 다른 그룹도 사업재편에 뛰어들고 있다. 기업들에 ‘선택과 집중’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특정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이처럼 사업재편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다. 유명무실해진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법은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란 ‘당근’으로 기업들의 자발적인 사업재편을 유도하기 위해 2016년 제정됐다. 하지만 기활법 승인 기업 수는 2017년 51개에서 지난해 34개로 급감했다. 올해는 반년이 가까워오지만 4개사에 그치고 있다. 대기업 특혜를 우려해 지원 범위를 ‘공급과잉 업종’으로 제한한 탓이다. 이러다 보니 ‘활력 제고’는커녕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법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마저도 8월이면 법이 일몰된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원 범위를 놓고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일몰 연장 개정안을 처리할 국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

일본에는 한국 기활법의 모델인 산업경쟁력강화법이 있다. 적용 대상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사업재편 기업과 첨단 설비투자 기업, 벤처기업 등 광범위하다. 부실기업은 물론 정상 기업에도 각종 혜택을 준다. 히타치, 스미토모금속 등이 선제적 사업재편에 적극 나선 배경이었다. 화력발전 통합 법인인 히타치미쓰비시파워시스템의 탄생 뒤에도 이 법이 있었다. 일본을 앞서갈 수 없다면 따라가기라도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일몰 연장과 함께 제대로 된 원샷법 개정에 나설 때다. 언제까지 ‘반샷법’이란 소리를 들을 순 없지 않은가.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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