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천자 칼럼] '무(無)개념 정치'

‘우직한 곰은 주인을 몹시도 사랑했다. 그날도 주인은 식사 후 잠시 오수를 청했다. 오후 일을 위한 휴식이었다. 그날 따라 웬 파리 한 마리가 주인을 성가시게 했다. 주인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곰은 주인이 안쓰러웠다. 파리가 미웠다. 결국 곰은 그 거대한 앞발로 파리가 앉은 주인의 코끝을 내리치고 말았다.’

우화(寓話)라면 끔찍한 우화다. 맹목적이고 사리분별 없는 일을 하는 게 우직한 곰뿐일까. 개념을 잃어버리면 누구라도 이런 곰이 되기 십상이다. 사물과 현상을 접할 때나, 사회와 인간을 인식할 때나 ‘개념 파악’이 중요한 이유다. 축구면 축구, 야구면 야구에도 규칙이 있고 원리와 정석이 있다. 말하자면 개념이다. 개념에 최대한 충실히 따르면 프리미어리그의 선진축구가 되고, 개념을 상실하면 우왕좌왕 동네축구가 된다.

값비싼 사회적 비용이 치러지는 정치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좌파면 좌파, 진보면 진보, 보수면 보수, 개념부터 분명해야 정향(定向)이 되고 지향점도 분명해진다. 정치적 철학과 사회적 가치의 ‘도매상’이 정당일진대 정책과 국가운영, 경제 경영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하니 정육점에서 생선 팔겠다고 하고 때로는 공산품까지 다 있다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여의도 정치판이 싸잡아 비판받아온 데는 기본 개념이 부족한 탓이 크다.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가 만난 것, 용어 자체가 성립 안 되고 족보가 없는 것.”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 국회에서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혹평을 하며 한 말이다. ‘어설픈 진보’라는 말에서 우직한 곰이 연상된다. 저소득층을 위한다며 경제적 격차를 오히려 심화시켰다. 그렇다면 어설픈 진보와 무(無)개념 정치는 최악의 조합일 수 있다.

김대환이 누구인가.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시작해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당시에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 사이의 동료였다. 그런 그가 소주성에 대해 ‘괴물’이라며 “기본이 안 된 친구들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으니 화가 난다”고까지 말했다.

북유럽 ‘노르딕 좌파’가 근래 ‘스마트 좌익’으로 유연하게 변해온 것이나, 중국 공산당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극 받아들인 변신 과정이 한국의 좌파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북유럽 사회주의 정파들은 설사 중과세를 유지하더라도 규제혁파로 파이는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투자 유치와 시장 활성화를 향한 중국의 노력은 새삼 거론할 것도 못 된다.

김대환은 어설픈 진보라고 했지만 ‘어설픈 보수’라고 했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게 우리 현실이다. 행여 야당들이 무개념 정치가 여당만을 향한 질타라고 여긴다면 그것 또한 ‘개념 상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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