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호 < 성균관대 의대 학장·소아청소년과 i101016@skku.edu >
[한경에세이] 거꾸로 뒤집기

의대 강의가 다른 학과와 다를 것이라 예상했다면 오해다. 일반 강의와 마찬가지로 질병 이름으로 시작하는 강의다. 병에 대한 역사에서부터 원인, 증상, 진단과 치료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전통적인 강의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처음 찾아온 환자의 얼굴에는 병명이 쓰여 있지 않다. 증상을 보고 거꾸로 진단해야 하는데, 막상 학교에서 배운 순서와는 반대여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아의 간과 관련된 A 질환을 강의하는 중 정신이 확 드는 질문을 던졌다. “나랑 내기할래요?”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금부터 교과서를 펼치고 해당 질환을 가진 환자가 처음에 어떤 증상으로 와서 진단되는지 맞혀 보세요. 맞히면 내가 치킨을 쏘겠습니다.” 못 맞힐 리 없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신난 표정이다. 한 학생이 기발한 질문을 던진다. “몇 명이 맞히면 사주시는 겁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한 명이요!” 그러고는 게임이 시작됐다. 5분 후 학생들이 답을 적어 머리 위로 올렸다. 책에 기술된 증상인 황달, 피로, 경련이 보인다. 하지만 모두 틀렸다. A 질환의 환자는 그렇게 진단되지 않는다. ‘어느 상황’에 대해 의사가 의심하고 ‘하나의 검사’를 진행해야 진단이 가능하다. 교과서를 보면 ‘어느 상황’은 증상 파트에 언급이 있고 중요한 ‘하나의 검사’는 진단 파트에 적혀 있다. 그러나 이를 연결하는 전문가의 진단 방법은 눈을 씻고 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러면 의사는 학교 때 무엇을 배우는가? 책에서 질병을 배우지만 진단은 하지 못하는 의학교육이 지금의 현실이다. 최근 들어서야 많은 의대에서 환자의 실제 ‘임상 표현형’부터 진단에 이르는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수의 강의법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실제 상황에 맞는 임상추론을 가르치려면 전통 강의법으로는 어림없다. 실제 상황을 가르치고 여기에 경험이 합쳐져야 의사의 자질이 발전하고 국민의 이득으로 이어진다. 1차 의료기관부터 빠른 진단이 이뤄지면 의료전달체계가 올바로 서고 불신이 사라진다. 지금과 같은 대학병원 쏠림 현상도 해결될 것이다.

내기에서 진 학생들은 풀이 죽었다. 결국 모두에게 치킨을 사야만 했다. 졸업한 학생들과 병원에서 자주 마주치는데, 한 졸업생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던졌다. “교수님, 그때 강의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고맙습니다. ”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걸 보니 거꾸로 뒤집어 가르쳤던 강의법이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파가 될 것 같다. 다윈의 자연선택처럼 좋은 문화유전자(밈·meme)는 우리에게 선택받아 내려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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