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천자 칼럼] "대만은 국가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는 이른바 ‘죽(竹)의 장막’을 걷어 내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때 중국이 미국에 요구한 주요 조건이 대만과의 외교관계 단절이었다. 대만과의 단교는 1992년 한국과의 수교 때도 중국이 내건 최대 조건이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그만큼 비중이 크다. 대만이 큰 틀에서 중국의 일부라는 의미로, 미(未)통일 지역이라고 천명하는 일종의 외교 이데올로기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긴장이 고조됐다 다소 풀렸다 반복해 흔히 ‘양안(兩岸)관계’ 또는 ‘양안문제’라고 한다. 실제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마카오와 홍콩도 포함된다.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로 양국은 새로운 관계를 열었다. 하지만 이날 한국의 다수 화교와 대만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 정부가 오랜 우방 대만과 단교한 날이기도 했던 것이다. 서울 명동의 3000평 규모 ‘중화민국 대사관’이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만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가 구입했던 터를 8·15 광복 후부터 자국 대사관으로 사용해왔던 대만은 ‘외교 관례’에 따라 그 자리를 내놔야 했다. 동서고금에 국제관계는 냉혹하고, 국제질서는 무섭다.

한국과 대만이 단교 1년여 만에 대사관, 영사관보다 격은 낮지만 대표부를 서울과 타이베이에 설치하고 경제협력과 인적·문화교류를 이어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과거 상하이, 충칭으로 떠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만으로 정통성이 이어진 중국 국민당이 큰 도움을 줬고, 대만 국부(國父) 장제스가 2차 세계대전 중 카이로 선언에 ‘한국에 자유와 독립을 준다’는 내용을 담는 데 적극적이었던 사실도 우리로서는 잊을 수 없다.

미국이 단교 40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은 국가’라고 공식 지칭해서 난리다.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라는 국방부 문서를 통해서다. ‘중국 주변 자유진영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을 기술하는 대목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중국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평가도 나오고, “중국의 금기를 찔렀다”는 해석도 있다.

무역·관세전쟁 양상의 미·중 갈등은 ‘화웨이 문제’ 등을 놓고 최근 기술전쟁으로 확대돼왔다. 이제 전선이 더 넓어져 ‘가치전쟁’ ‘미래동맹재편전쟁’으로 비화되는 분위기다. 미·중 대립의 불똥이 어느 쪽으로, 어떻게 튈지 예측불허다. 설사 극적인 타협으로 봉합이 된다 해도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갈등 구조다. 대한민국 외교에 더 큰 파도가 밀려온다. 기업과 학계 등 다원화된 민간외교 역할이 커졌다지만, 아직은 국가의 흥망이 정부의 외교역량에 더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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