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젠 베트남이다"
베트남 북동부의 하이퐁 경제특구에 최근 중국 기업 16곳이 입주했다. 2017년 말까지 이곳에 들어온 중국 기업은 5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6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발표한 뒤 입주 기업이 부쩍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하이퐁 경제특구의 고용 인력이 올해 2000여 명에서 2021년 3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미국 등 다른 나라 기업들도 전자제품이나 전화기기 등의 생산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베트남이 새로 건설하는 경제특구만 30개에 이른다.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도 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달 1조2000억원을 들여 베트남 시가총액 1위 빈그룹의 지분 6%를 확보했다. 한화그룹도 빈그룹에 4800억원을 투자했다.

베트남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외국인 투자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증가한 167억달러(약 20조원)를 기록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6.79%나 됐다. 이를 두고 “미·중 무역전쟁의 승리자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베트남”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몰리는 것은 단순한 무역전쟁의 반사이익 때문만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세제 혜택과 저렴한 인건비 등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은 법인세를 4년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후 9년간 5%, 2년간 10%를 낸 뒤로도 최고 20%만 납부하면 된다. 월 최저임금은 지난해 기준 호찌민시 지역이 172.8달러로 중국 상하이(365.6달러)의 절반 이하다.

우수 인재도 많다. 정보기술(IT) 교육 과정을 갖춘 254개 대학·전문대에서 매년 10만 명의 공학 전공자가 배출된다. 이들을 포함해 IT 분야에서만 한 해 20여만 명의 전문 인력이 공급된다. 인프라 투자도 활발하다. 올해 발주된 베트남 최대 토목사업 ‘동부지역 남북고속도로’에는 5조원이 투입된다.

베트남은 전체 인구 9700여만 명의 40%가 35세 미만인 ‘젊은 나라’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다. 통일 후 10여 년 만에 ‘도이모이(쇄신)’ 정책으로 시장경제를 빨리 도입한 순발력도 여기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차이나 엑소더스(탈중국)’에 이은 베트남의 급부상이 글로벌 생산망 재편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흥미로운 것은 베트남의 발전 모델이 한국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의 새로운 성장 거점인 경제특구는 한국 수출자유지역 등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의 경제발전 연구서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에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곳도 베트남이었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