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보험의 미국도, 전국민의료의 영국도
건강복지는 보험 재정·지불능력에 달려
의료 갈등 접고 보험재정 확대 고민을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전문가 포럼]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공급자는 한편이어야

20여 년 전 미국 연수 시절, 시사프로그램인 ‘60분(The 60 Minutes)’을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추적 60분’ ‘PD 수첩’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인데 미국 의료보험 운영회사 HMO를 고발하는 내용이 제법 많았다. 서민들이 가입한 의료보험의 보장 내용이 가입 때 설명한 것에 비해 형편없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인상적인 부분은 암에 걸린 환자가 완치 가능한 수술치료를 받지 못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약물치료를 받아야 해 병이 악화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과 의사는 수술이 최선이지만 보험사가 비용을 내지 않는 한 수술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좋은 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그 병원에서 같은 병으로 수술치료를 받고 완치돼 퇴원하는데, 누구도 의사와 병원은 비난하지 않은 채 보험사의 부도덕성만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수술 담당의사까지 자기가 수술을 못하는 이유가 보험사 탓이라고 비난했다. 당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그 보험보다 나은 수준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일이 벌어졌으면 병원과 의사가 돈밖에 모른다고 난리가 날 상황이었다.

국민 전체가 같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좋은 보험에 들어야만 최선의 의료혜택을 받는 미국식 제도의 불합리성이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보험자의 횡포에 의료 공급자와 보험 가입자가 한목소리로 보험자를 비난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민영 의료보험과 대비되는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가진 영국의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하반신 마비 환자가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과정에 영국 병원의 사회복지사 역할을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과정을 영국의 의료를 접해본 한 의사가 어떤 강연에서 설명했다. 영국 사회복지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자세를 우리 의료인이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그 사회복지사는 기본적으로 환자에 대해 헌신하는 자세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영국 국민건강보험인 NHS에 정규직으로 고용돼 월급을 받고, 1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자도 많지 않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신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공급자의 넉넉한 고용에 기반한 인건비 지출과 높지 않은 노동강도가 영국 의료의 한 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영국 사회는 막대한 재정을 건강보험에 투입하고 있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영국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효율적이지 못하고 재정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려는 나라는 없다.

며칠 전 서울대병원 노조는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간접고용을 비난하고 청소·시설관리, 환자 급식, 전산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800여 명의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병원장에게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경영하는 병원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혀 상반된 의료제도를 가진 미국과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본질은 보험자의 재정과 지급 능력이다. 의료현장에서 만나는 의료 공급자, 종사자, 가입자끼리 다투고 갈등할 일은 아닌 것이다. 노조의 주장을 관철하려면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을 설득해 보험재정을 확대하는 일밖에 없다.

우리나라 건강보험과 관련한 정책의 최종 심의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특징이 있다. 의료수가 결정 등을 놓고 항상 의료 공급자와 보험당국을 포함한 나머지 위원들의 이견과 갈등이 화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어느 나라도 이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보험당국이 외톨이고 공급자인 의료인과 가입자가 한편인 것이 상식이다.

물론 의료보험이 생겨날 때의 사회·문화적 배경, 의료인의 사회에 대한 기여와 의료인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 등 부차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재정과 적정 원가의 지급 능력을 지닌 보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가입자인 국민과 공급자인 의료계가 같은 입장이 돼야 한다. 싸게 받고 좋은 혜택을 준다는 보험자는 미국에서는 이미 사회적 고발 대상이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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