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움직이는 대형 전시회 바람
'그들만의 리그' 인식 심어줄까 우려

이원희 < 서양화가 >
[문화의 향기] 대중과 멀어져 가는 미술 전시회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서울 인사동은 특별히 북적인다. 거의 모든 화랑에서 저마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들로 1주일간의 전시회를 시작한다. 개막행사를 하고 뒤풀이를 해 주변 식당들이 동시에 시끌벅적해지는 것이다.

가히 ‘전시회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회뿐만 아니라 박람회, 비엔날레, 아트페어, 경매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시회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인터넷 공간에서는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세계 각국에서 선보인다.

우리에게 일상이 된 전시회가 생겨난 것은 미술의 경우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19세기 초 유럽에서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근대 산업사회 체제로 바뀌면서 왕족과 귀족이 몰락하고, 그 자리를 새로이 부를 거머쥐게 된 신흥 부르주아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봉건주의체제하에서 지배층의 주문에 따라 작품을 제작했던 작가들은 후원자들이 몰락하면서 수입에 문제가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흥 부르주아들이 모이는 살롱에 작품을 두고 그들의 눈에 띄기를 바라게 됐다. 여기서 간간이 작품이 팔리면서 ‘살롱’전이 시작됐다. 프랑스의 국전은 ‘르 살롱’이란 이름으로 작가들의 등용문이 됐다.

19세기 중반의 유명한 ‘낙선자 전람회’는 르 살롱에서 낙선한 마네, 모네를 비롯한 젊은 화가들이 나폴레옹 3세의 후원 하에 ‘앙데팡당’전 형태로 전시회를 열면서 인상주의의 효시가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상주의자의 작품을 나다르나 다게르 같은 사진가가 자신들의 아틀리에에 전시하고 판매한 것이 오늘날 화랑의 모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때부터 미술은 서서히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권력은 물론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작가들을 압도하고 작가들에게 교사 역할까지 했던 후원자, 즉 왕족, 귀족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을 대신한 신흥 부르주아들은 돈 이외에는 작가들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그 돈에 얽매여 작품을 제작한다는 자괴감을 갖게 된 작가들은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예술지상주의의 껍질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미술이 기존 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주도적인 흐름이 됐다. 그러니까 자본주의로부터 지켜내려는 작가의 자존심이 이제는 작품이 팔리지 않는 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으로 작가들의 경제관념을 바꿔버린 것이다.

새로운 구매처를 찾아 살롱으로 가면서 시작된 전시회의 양상이 화랑에서 각종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경매 등으로 바뀌는 듯하다. 전시회를 열고 손님을 기다리던 화랑들이 모여 아트페어를 개최하고 있고, 실험성과 지역성을 기치로 젊은 작가를 육성하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비엔날레에 대중이 몰려다니고 있다. 또 1차 시장인 화랑을 제치고 2차 시장인 경매에서의 거래가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런 대형 전시회는 상황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 자본과 그들의 그물망에 걸린 일부 작가만 조명을 받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도 난해한 작품을 내놓고 관람객을 가르치려고 드는 점 등은 이제 미술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을 심어 스스로를 대중과 격리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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