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증권거래세 인하, 금융세제 선진화의 출발점
자메이카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는 100m를 9.58초에 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리는 그에게는 한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단거리 육상에서는 빠른 출발이 매우 중요한데 볼트의 출발 반응 속도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느린 편이다. 볼트는 상대적으로 느린 출발 속도를 두 번째, 세 번째 보폭의 폭발적인 가속력으로 극복한다. 그의 ‘스타트’는 첫 번째 걸음에 이은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국무회의를 열고 3일부터 증권거래세를 내리는 내용의 ‘증권거래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두 달 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혁신금융 추진방향’의 후속조치다. 금융세제 체계 개편의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유가증권과 코스닥 시장의 거래세율은 0.05%포인트 떨어진다. 창업 초기 중소·벤처기업이 주로 상장되는 코넥스 시장의 인하폭은 이보다 큰 0.20%포인트다. 코넥스 시장 세율을 더 많이 내린 것은 벤처기업 투자자금 회수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세율 인하로 투자자가 거래할 때마다 내는 주식 거래비용은 낮아지게 됐다. 유가증권이나 코스닥 시장의 거래비용은 6분의 1 정도 줄어든다. 이를 주식에 재투자하거나 소비지출에 사용하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23년 만의 증권거래세 인하 조치로 투자심리가 개선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다만 주식시장은 대내외 경제여건과 기업 경영실적 등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증권거래세가 인하되면 주식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증권거래세 인하는 단순히 세율을 낮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금융세제 전반을 꼼꼼히 검토한 뒤 개선해나가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다수는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1989년 이후 10년에 걸쳐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로 이행했다. 영국은 증권거래세와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병행해 운영하고 있다.

투자 손실에 대한 이월 공제와 손실을 이익에서 차감하는 손익 통산을 허용한다는 점도 OECD 회원국 사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이다. 미국은 장기투자에 낮은 세율로 우대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를 일부 대주주나 장외시장 거래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결국 금융세제 선진화를 위해서는 증권거래세와 주식 양도소득세 간 전반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이는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과의 과세 형평,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 영향, 투자자 납세협력 비용, 세수 등 다양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중장기적 과제다.

이에 정부는 주식시장 과세제도 개선과 관련해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 이달부터는 관계기관과 전문가 중심으로 ‘금융세제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금융세제 전반을 밀도있게 검토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금융세제 개선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세제 개편은 한국 자본시장을 선진화하는 동시에 과세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