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떠나가는 '한강의 기적' 주역들
“우리나라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제품 원료를 모두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고생은 우리가 하고 단물은 일본이 다 빼먹는 격입니다. 석유화학공업을 키우면 원료에서 제품까지 국산화하고 자립할 수 있습니다.” 1965년 1월 오원철 당시 상공부 공업국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브리핑한 요지다.

이렇게 해서 석유화학공업은 포항제철 건설과 함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 사업이 됐다. 1972년 국내 최초의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됐다.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된 오원철 씨는 중화학공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창원 울산 온산 구미 여수 등 6개 도시의 공업단지 조성을 진두지휘했다. ‘오일 쇼크’ 때 중동에 진출해 달러를 벌어들이자는 묘안도 그가 냈다.

박 대통령에게 ‘국보(國寶)’로 불렸던 그가 그제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와 함께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화 주역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다. 2013년 타계한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시절 과감한 수출드라이브로 우리 경제를 키웠다. 별명이 ‘경제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다.

2011년 별세한 ‘철(鐵)의 사나이’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창립자는 ‘산업의 쌀’인 철로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꿈을 이뤘다. 1978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일본에 가서 “포항제철소 같은 제철소를 하나 지어달라”고 했다가 “공장이야 지을 수 있지만 중국에는 박태준 같은 인물이 없어서 제철소는 못 지어준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이들은 자신의 실적뿐만 아니라 실패 사례, 정책 입안 과정의 문제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한국의 경제개발 과정을 입체적으로 정리한 오원철의 《산업전략 군단사(軍團史)》, 경제정책 입안의 배경과 의미까지 설명한 남덕우의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박태준 평전》에도 생산성과 국가경쟁력을 높인 비결이 담겨 있다.

이들의 경험담과 조언에는 경제 운영에서 아쉬웠거나 반성해야 할 점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더없이 소중한 우리 시대의 교훈서다. 그 소중한 경험들은 제대로 전수되고 있는 걸까.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1주일에 한 번씩 자필로 편지를 써 보냈던 남 전 총리의 남다른 노력이 새삼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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