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수사기관의 불법적 피의사실 공표가 너무 잦다”며 방지책을 촉구했다. 검찰과 경찰의 위법한 수사내용 유출에 맞서는 반론권을 보장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주문했다. 최근 10여 년(2008~2018년) 동안 접수된 피의사실 공표 사건 347건 중 기소사례가 전무하다며 신속하게 시정할 것도 요구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형법(126조)은 수사기관이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예외없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검경은 법무부 훈령에 불과한 ‘수사공보준칙’에 근거해 피의사실 유포를 자행하고 있다. 신문지상에는 거의 매일 피의자의 혐의가 보도되고 있고, 수사기관은 여론 악화를 고리로 수사를 확대하고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는 일이 다반사다.

요즘 기업 수사에서 그런 경향이 특히 뚜렷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혐의 수사 과정은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최고위 경영자가 증거 인멸에 관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통화 녹음 파일이 복원됐고, 합병 관여 정황이 포착됐다’는 식의 미확인 내용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하나같이 ‘분식회계’가 확정된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1, 2심에서 증권선물위원회의 ‘삼바 대표 해임권고’ 조치 집행정지를 결정한 데서 보듯 분식 여부는 미확정이다. 사실처럼 유포되는 내용의 상당수는 작년 2월 이후 19차례의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의 짜깁기로 의심받고 있고, 법원 증거로도 채택되기 힘들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기업을 범죄집단처럼 다루는 모습이다.

‘글로벌 초일류기업’ 삼성이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니 다른 기업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진그룹은 작년 4월 ‘물컵 사건’ 이후 1년 동안 11개 정부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 검찰 관세청 법무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어지간한 기관이 총동원돼 18차례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오너 일가가 포토라인에 선 횟수만 14번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의사실이 공표됐고, 이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는 한 요인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정작 ‘물컵 사건’은 불기소됐고 ‘땅콩 회항’ 항로 변경도 무죄를 받았다. 조 회장 자택에 대형금고와 비밀의 방이 있다는 관세청발(發) 의혹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여론을 잔뜩 들쑤시고 난 뒤였다.

혐의 공개는 법관이나 배심원들에게 예단을 줘 피의자의 공정한 재판을 위협하게 된다. ‘알 권리’ 등을 앞세워 혐의를 흘리며 여론전을 펴는 수사기관의 행위는 과거사위원회 지적대로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언론에 슬쩍 흘리는 것은 물론이고, 중간 수사결과 발표도 범법행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한 뮬러 특검은 2년 가까운 수사기간중 임명 직후에 단 한 차례 수락 기자회견만을 했을 뿐이다. “오보 대응 등을 위한 극히 제한적인 공표만 허용해야 한다”는 과거사위의 권고를 법무부는 즉각 이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