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정당 몰락한 유럽의회와 EU의 미래

유럽의회, 극우·녹색당 약진…EU 통합 퇴조 불가피
브렉시트보다 난민 등 대처해 영국이 권한 갖는 방식도
유로화 약세, 달러 중심 브레튼우즈체제 재탄생 관심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뉴스의 맥] 극우 돌풍 유럽의회 선거…EU '이원적 운영' 검토될 수도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앞날이 ‘혼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영국에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수정안이 세 차례에 걸쳐 부결되면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사임했다. 오는 7월 말에 선출될 새 총리는 10월 말로 연기된 브렉시트를 마무리해야 한다. 영국이 EU에 잔류하기 위한 찬반 재투표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유럽의회에 EU에 반대하는 정치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한 극우 세력과 녹색당의 힘이 부쩍 커졌다. 유럽통합은 단일 세계 경제 현안 중 역사가 가장 길다. 자유사상가에 의해 ‘하나의 유럽 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하면 110년, 이 구상이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60년이 넘는다.

한마디로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혀 어렵게 마련된 것이 EU다.

EU는 두 가지 경로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영국은 가담하지 않았지만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통합(EEU)에 이어 정치통합(EPU), 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한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하지만 EU 헌법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의 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주권 문제로 인해 ‘심화’ 단계가 먼저 난관에 부딪혔다. 오히려 EEU에 잠복됐던 불안 요인인 재정위기를 7년 전 겪으면서 회원국 간 관계는 퇴보된 느낌이다. 유럽통합 과정에서 독일, 프랑스와 함께 핵심 회원국 역할을 해온 영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브렉시트가 확정돼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되면 EU의 앞날에 커다란 시련이 예상된다.

이는 다른 회원국 탈퇴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회원국은 경기 침체 속에 난민, 테러 문제 등이 겹치면서 유럽통합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로존 탈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동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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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는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

분리 독립운동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스크,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러시아와 근접한 우크라이나 동부 등이 분리 독립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 독립운동마저 일어난다면 EU는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셉 바이너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 발전 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창출 효과가 무역전환 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 이득이 된다. 반대로 영국 등 어떤 회원국이 탈퇴하면 당사국뿐만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가 결정될 경우 2030년까지 영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가구당 연 4300파운드(현재 환율로 702만원)의 손실을 가져다주는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20년에 3%, 2030년에는 5%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EU 탈퇴와 분리 독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1975년 치러진 영국의 국민투표에서는 브렉시트가 부결됐다. 1995년 퀘벡과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도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반대표가 더 많이 나왔다. 전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정치적 야망으로 잘못된 길을 걸었던 영국에서 메이 총리의 사임과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당인 보수당이 크게 퇴조한 것을 계기로 EU 잔류를 위한 찬반 재투표 문제가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직전까지 예상됐던 극우 세력의 압승에 제동이 걸리고 ‘약진’ 수준에 그친 것은 유럽 통합이 쉽게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유럽 유권자의 최후 견제 심리 때문이다. 7년 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세계 경제 패권을 다투는 미·중 간 무역마찰이 점입가경 국면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유럽의 위상이 얼마나 무력한지 유럽 유권자는 뼛속까지 절감하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EU의 행정 수반인 집행위원회 위원장, 대외부문 대표인 EU정상회의 의장, 입법기관 대표인 유럽의회 의장에 변수가 생겼다. 오는 9월 임기가 끝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연임에도 복병이 생긴 만큼 ECB 통화정책과 유로존 경기 그리고 유로화 가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유럽의회 정책변수 주목해야

EU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메이 총리 사임과 유럽의회 선거 이후 ‘현 체제 유지’ ‘붕괴’ ‘강화’ ‘질서 회복’ 등 네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7년 전 유럽재정위기와 브렉시트, 그리고 투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유럽의회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에 대해 회원국들이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도 진흙탕 속을 헤맬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다른 회원국 모두에 차선책으로 ‘B-EU(Britain+EU)’ 방안이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영국을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에 대해 자체적인 해결 권한을 갖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영국은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 현안을 풀어갈 수 있어 브렉시트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B-EU가 선택된다면 프랑스처럼 테러 피해로 인해 국수주의 움직임이 거센 회원국이나 이탈리아처럼 난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국은 이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B-EU에 이어 ‘F-EU(France+EU)’ ‘I-EU(Italy+EU)’까지 적용될 경우 EU에 이어 유로존에서도 ‘이원적 운영체계’가 공식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유로존의 앞날과 유로화 움직임에 변곡점이 될 수 있다.

'英+EU' 이원적 운영 논의 부상

이원적인 운영체계는 유로화가 도입되기 이전에 운영된 ‘유럽조정메커니즘(ERM)’과 원리가 동일하다. 독일처럼 경제 여건이 좋은 회원국에는 ‘경제수렴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스 등과 같은 경제 여건이 나쁜 회원국에는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이 말 한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졌다. 브렉시트 논란,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세력의 약진 등으로 EU의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을 잘 읽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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