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게리맨더링 우려와 국민을 위한 정치
국회가 53일째 닫혀 있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국회 정상화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민주당이 다수당으로 국정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 정국 경색을 푸는 책임도 민주당에 있다. 한국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집권당의 책임정치가 아니다.

교착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사태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 한국당을 뺀 야 3당의 선거법 개정안을 받아주는 거래를 했다. 또 한국당을 빼고 4당만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실험을 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만들어졌다면 2019년에는 4당 연합이 막을 올렸다.

한국당은 기존 양당 체제를 벗어난 국회 운영방식에 반발했고 자신을 뺀 선거제 변경에 폭발했다. 한국당은 ‘문재인 좌파독재’ 타도를 외치며 연좌하고 누웠다. 반대로 민주당은 ‘법대로’ 하겠다며 고소·고발, 경호권 발동으로 대응했다. 과거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다수결주의에 ‘독재’를 외치며 반발하고, 한나라당은 ‘법대로’ 대응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여야가 ‘법대로’와 ‘독재 타도’로 격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여전히 선거제 개정, 공수처, 검경 수사권을 둘러싼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패스트트랙으로 올린 개정 선거법은 연동형 비례제, 6개 권역 분할, 석패율제 등 세계에 유례없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식이었다. 명분은 사표를 줄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민은 찍으면 당선되는 간편한 제도를 원하고 있음을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법에 대한 찬반을 묻자 반대 47%, 찬성 35%로 반대가 12%포인트 높았다.

석패율제 도입도 문제다. 이는 지역구 선거에서 ‘석패’하더라도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려 국회의원 당선이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정당 지도부가 원하면 국민이 지역구 투표에서 떨어뜨린 후보자를 기어이 국회로 보낼 수 있는 제도다. 국민이 지역구 선거에서 심판한 것을 정당이 비례대표로 뒤집는 선거제인 셈이다.

선거 연령 18세 하향도 재고돼야 한다. 교실을 선거판으로 물들이고 ‘교복 입고 투표’하는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선거 연령 하향 전에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7세로 낮추는 법 개정을 먼저하고 선거 연령을 낮춰야 하는데 앞뒤가 바뀌었다.

순서가 바뀐 것은 또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은 지역구 의원을 225석으로 현행 253석보다 28석이나 축소시켰다. 선거구 조정이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는데, 그 작업은 뒤로 미룬 채 지역구 의원을 축소했다. 이대로라면 특정 정당 및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기형적으로 선거구가 나뉘는 ‘한국판 게리맨더링’이 될 것이다. 의원 숫자에 관해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300명 고수’라는 처음 약속과 달리 민주평화당뿐만 아니라 바른미래당, 정의당이 가세해 30명 내지 50명 증원을 외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 전체 300석보다 많아지는 선거법에 ‘72%’라는 절대다수 국민의 반대 여론에 눈감은 것이다. 이렇게 선거법 개정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됐다.

정치권은 국민이라면 누구든 동의하고 납득할 만한 선거제를 마련하는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이 각기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세 법안의 재논의를 결심하는 게 핵심이다. 먼저 서로 관련없는 세 법률을 분리해야 한다. 팩스 법안 접수, 비정상적 특위 의원 교체 등 ‘꼼수 진행’으로 특위 자체가 정당성을 상실했으므로 특위를 폐지하고 패스트트랙 법안을 사장(死藏)시키는 게 옳다. 대신 국회를 열어 상임위에서 법안들을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민주당은 민의의 변화로 법안 통과 자체가 난망해진 현실을 인정해야 하고, 한국당은 실리를 고려해야 한다. 실리 없는 민주당 사과에 집착하지 말고 법안 재논의에 성실히 임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 정도다.

여야는 싸울 만큼 싸웠다. 어려운 경제 때문에 고생하는 국민을 생각해 ‘상호 관용’을 보이고 타협해야 한다. 정치란 제압의 기술이 아니라 타협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