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률시장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지난해 말 서울지역 법원에 근무하던 판사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최근에는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검사가 희귀암으로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사망 원인은 과도한 업무에 따른 과로 및 스트레스로 추정됐다.

우리나라는 고소·고발 사건이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법원의 업무량, 특히 상고심인 대법원 사건 수는 매년 4만6000여 건,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평균 3600건 이상으로 가히 살인적인 업무량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상고법원 도입이 추진됐고, 무리하게 이를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고소·고발 사건을 보다 충실하게 수사하고 깊이 있게 검토하려면 먼저 검사가 증원돼야 한다. 대법원 사건 수를 줄이기 위해 하급심 심리의 충실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판사 수도 크게 늘려야 한다. 대법관과 이들을 보조하는 재판연구관 증원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이와 반대로 변호사들은 넘쳐나고 있다. 변호사시험 제도 도입 이후 연간 약 1500명의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배출되고 있다. 전국 최대 변호사단체인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개업 회원 수는 올해 1만6000명을 넘어섰다. 올해 창립 112주년을 맞은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00년에 걸쳐 약 8000명의 변호사를 배출했다. 이후 불과 12년 사이에 8000여 명의 변호사가 늘어났다.

이 지점에서 이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에 나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과학적 인식은 ‘대상’이 아니라 실은 우리의 ‘주관적 구성’이 작용한 결과라는 칸트의 역발상 말이다. 변호사 수를 늘려 국민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결정한 주체는 국가다. 국가는 국민이 변호사뿐 아니라 검찰, 법원, 정부, 국회, 각 지방자치단체, 정부출연기관 등에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국가가 나서 변호사 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정부와 각 지자체의 변호사 채용 확대는 법치 행정 달성과 국민의 권익 증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항상 이런 이슈에선 ‘예산이 문제’라는 스테레오타입식 답변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각종 선심성 예산을 조금만 줄여도 당장 판검사 대폭 증원 및 국가의 변호사 채용 확대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선거 때마다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겠다’는 국회와 ‘사람이 먼저다’는 정부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더 노력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