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관성·합리성 결여한 '3차 에너지계획'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확정을 앞두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의거해 에너지 안보와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5년 주기로 수립하는 에너지 분야의 국가 대계(大計)다. 국민 입장에서 볼 때 국가 대계는 신뢰할 만한 일관성과 함께 납득할 만한 과학적 합리성이 있어야 하며, 미리 대응·적응할 수 있도록 중장기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제3차 기본계획의 내용은 아쉬움이 크다.

첫 번째 논란거리는 최종 에너지 수급 전망 및 수요 억제 계획이다. 정부는 수요 관리에 역점을 두고 20년 뒤의 에너지 수요를 2017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겠다고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소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에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향후 20년간 경제가 연평균 2% 성장한다고 하면서 2040년도 에너지 최종 수요를 지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전기차 등이 확산되면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제3차 기본계획의 전망과 다르게 급증할 여지도 있다.

제3차 기본계획의 목표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드는 까닭은 5년 전 제2차 기본계획에서 전망한 내용과 일관성이 없고 일부는 상충하기 때문이다. 제2차 기본계획에서 정부는 2035년까지 에너지 목표 수요를 연평균 0.3% 증가하는 것으로 잡았다. 이제 와서 20년 후 에너지 수요를 현행 수준보다 줄이겠다고 하니 정부는 이 간극의 원인과 계획의 실현 가능성, 방법론을 국민에게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정부가 에너지 수요를 너무 낮게 잡은 한편, 소비 억제의 정책 효과를 과신한 탓에 나중에 에너지 안정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고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과 국민경제에 전가될 것이다.

두 번째 논란은 ‘에너지 믹스’ 정책의 급격한 전환에 관한 것이다. 제3차 기본계획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믹스로 전환한다’며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행보다 4~5배 많은 30~35%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원전 비중을 정확히 얼마나 줄인다는 목표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에너지 믹스 정책 방향 면에서 5년 전의 제2차 기본계획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제2차 기본계획에서 정부는 원전 비중을 29%(2035년)로 설정하고 이미 확정된 원전 건설 및 운영계획을 제외하고도 7기가와트(GW)의 원전 건설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에너지 안보, 산업경쟁력, 온실가스 감축 등에서 원전의 역할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원전 비중의 급격한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및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원전을 감축하겠다고 급선회했다. 에너지 안보, 산업경쟁력, 온실가스 감축 면에서 원전을 대체할 만한 검증된 대안이 생겼다는 것인가?

모든 선택에 기회비용이 있듯이 에너지 전환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다. 올 1분기에 한전은 최대 규모의 적자(연결기준 6299억원)를 기록했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많은 국민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정부가 정책 목표와 계획을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국가 에너지 대계를 급선회하려면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과학적 논거와 함께 전환 비용 추계를 제시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과 산업계의 혼란과 갈등은 가중되고 정부 불신, 정책 불신은 증폭된다.

중장기 정책은 일관성, 합리성, 예측성이 있어야 한다. 5년 후에 에너지기본계획을 다시 짤 때 또 바뀌겠지 하는 냉소적 기대가 형성되면 국가 에너지 대계는 매번 성과 없이 소모전으로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