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식량지원, 북한은 원치 않는다는데…
“그 무슨 ‘계획’이니,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북남(남북) 관계의 새 역사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염원에 대한 우롱이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메아리가 지난 12일 ‘북남선언 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목으로 쓴 기사의 한 대목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해당 기사에서 “시시껄렁한 물물거래나 인적교류 같은 것으로 역사적인 북남선언 이행을 굼때려(때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 걸 보면 그 의도가 명백하다.

북한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이미 객관적으로 증명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3일 발표한 공동보고서에서 북한의 지난해 식량 생산 규모를 2008년 이후 최근 10년간 최저 수준인 490만t으로 추산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1일 “올 들어 전국 평균 강수량이 54.4㎜로 평년의 42.3%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봄 가뭄이 올해 작황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부는 8일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 추진을 공식화했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간담회도 열 예정이다. 그런데 정작 북한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주느냐”고 반박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북한은 우리 정부 차원의 식량지원을 절대로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 입장에서 ‘최고 존엄’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조선’에 고개 숙여 식량을 받는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 정부에 원하는 건 이미 김정은의 신년사에 나와 있다.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 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는 문장이다. 남북한 경제협력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은 메아리의 표현대로 ‘시시껄렁한’ 행위에 불과하다.

북한은 한국을 극도로 현실적인 ‘이익 거래 파트너’로 바라본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다. 우리 정부가 이를 위해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다. 4일과 9일 잇따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유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런 북한을 향해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외친다. 정부는 이 차가운 현실을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