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데스크 시각] 눈 들어 이스라엘을 보라
국가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외부의 강한 충격이 필요할 때가 있다. 충격을 현명하게 흡수하면 국민의 에너지를 결집해 발전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다음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런 사례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미국은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졌다. 대응에 나섰다. 1958년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했다. 1961년 케네디 정부는 10년 내 달을 정복하겠다는 목표(아폴로 계획)를 세웠다.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선 달 착륙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켰다.

아폴로 계획의 연구개발 성과는 민간 기업으로 속속 이전되고 상업화됐다.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정부와 국민이 과학·기술·공학·수학 이른바 ‘스템(STEM)’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인식하고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스푸트니크 충격을 현명하게 흡수한 ‘아폴로 효과’였다.

세계 최초의 민간 달 착륙 도전

약 50년이 지난 올해 4월 11일. 이스라엘의 민간 무인 달 착륙선인 베레시트가 달 표면 착륙을 코앞에 뒀다. 갑자기 주엔진이 정지했고, 통신이 끊기면서 베레시트는 추락했다. 달 착륙까지 남겨둔 거리는 불과 20.8㎞였다.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달 궤도에 베레시트를 진입시킨 실력만으로도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베레시트가 착륙에 성공했다면 세계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이 될 뻔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달에 우주선을 착륙시킨 국가가 됐을 것이다.

베레시트 프로젝트는 이스라엘 비영리기업 스페이스일(SPACEIL)이 추진했다. 알고 보니 2011년 청년 엔지니어 세 명이 아이디어를 내 출발했다. 이들은 구글이 주최한 민간 달 개발 아이디어 경연 프로그램(Lunar X Prize)에 참여했다. 구글 프로그램은 최종 우승자를 가리지 않고 중단됐으나 이스라엘 청년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 억만장자 기업가 모리스 칸이 베레시트 프로젝트에 자금을 댔다. 1983년 세워진 이스라엘우주청(ISA)도 거들었다. NASA는 자문 역할을 했다. 청년 엔지니어 세 명의 꿈과 도전이 이스라엘의 꿈과 도전으로 비상했다.

'베레시트 쇼크'가 필요한 한국

놀라운 건 이스라엘 청년 세 명이 꾼 꿈과 도전의 동기다.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켜 역사에 기록을 남기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미래세대가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갖도록 자극하겠다는 것이었다. 달 착륙 성공이 국가 경쟁력의 기반인 STEM 교육의 폭발적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충격을 주겠다는 게 목표였다. 제2의 아폴로 효과를 노렸다.

스페이스일은 베레시트 추락 직후 베레시트 2호를 개발해 2년 내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다시 도전하자”며 사기를 북돋웠다. 추락 직전 베레시트는 몸체에 부착된 동판의 이스라엘 국기를 찍어 전송했다. 그 국기엔 ‘작은 나라(SMALL COUNTRY), 큰 꿈(BIG DREAMS)’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스푸트니크 1호에서 아폴로 11호를 거쳐 베레시트 1호로 이어진 충격과 도전. 한국에도 ‘베레시트 쇼크’가 절실하지 않을까. 우주청 설립은커녕 2025년(노무현 정부), 2023년(박근혜 정부), 2030년(문재인 정부)으로 계속 목표가 바뀌는 판에 달 착륙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스트롱 코리아’를 위해선 무엇보다 STEM 교육에 쇼크가 필요하다.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