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천은사 스님들, 山賊 누명 벗었지만…
천년고찰 천은사는 10년 넘게 지리산 탐방객의 공적(公敵)이었다. 1987년부터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받아온 입장료 때문이었다. 산중 사찰이 해묵은 원성의 대상이 된 건 2007년. 20년이나 문화재 관람료와 통합 징수했던 지리산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다. 공원 입장료일 땐 별말 없이 내던 사람들이 문화재 관람료에 대해서는 반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천은사는 사찰에서 1㎞쯤 떨어진, 노고단으로 가는 861호 지방도로에 매표소를 뒀기에 마찰이 심했다. 천은사 근처에도 가지 않는데 왜 내야 하느냐는 거였다.

탐방객들로선 억울한 노릇이지만 사정은 사찰 쪽도 마찬가지였다. 입장료 폐지 요구에 천은사는 “매표소 일대 지방도를 포함하는 땅까지가 모두 천은사 소유이므로 통행세가 아니라 공원문화유산지구의 문화재 관람료 및 토지 관리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탐방객과 시민단체는 사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산적 통행료를 없애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천은사 대타협' 근본 해법 될까

지난달 29일 이 해묵은 갈등이 해소됐다. 환경부와 문화재청, 전라남도 등 8개 관련 당사자들이 업무협약을 맺고 1600원씩 받아온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폐지했다. 매표소도 철수했다. 대신 환경부는 천은사 주변의 탐방로를 정비하고, 전라남도는 해당 지방도로의 부지를 매입하기로 했다. 문화재청과 관련 지방자치단체는 천은사의 운영기반 조성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탐방객의 불편을 없애는 동시에 지역사회가 공생할 수 있는 ‘상생의 본보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천은사 대타협’ 이후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는 지리산 화엄사, 속리산 법주사, 설악산 신흥사, 오대산 월정사, 치악산 구룡사 등 24개 사찰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국립공원에 들어가는데 왜 사찰에서 돈을 받느냐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봉이 김선달식 관람료’ ‘산적 통행료’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보면 사찰만 탓할 일은 아니다. 논란의 핵심은 279㎢에 달하는 국립공원 중 7.2%가 사찰 소유지라는 점이다. 가야산은 40%, 내장산은 30%에 육박한다. 사찰 외에 민간인 소유지도 26% 가까이 된다.

사유지에 대한 보상방안 필요

문제는 1967년 지리산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한 이래 22개의 국립공원을 지정·관리하면서 사유지를 매입하거나 사용료를 내지 않은 데 있다. 대신 정부는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이미 징수 중이던 문화재 관람료를 자연공원법에 근거한 공원 입장료와 통합 징수하는 미봉책을 썼다. 국립공원 지정에 따른 관리·이용 등의 제약에 대한 보상의 성격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는 바람에 불똥이 애꿎은 사찰과 국민에게 튄 것이다. 당사자인 정부는 뒤로 빠진 채 탐방객과 사찰이 해묵은 싸움을 하고 있는 이유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국립공원 내 사유지에 대한 보상 방안을 마련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대원칙 내지 큰 틀의 합의도 없이 각 사찰과 관련 지자체 등의 손에 맡겨 놓아선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관람료를 받지 않는 대신 국가나 지자체가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입장료를 카드로 결제하지 못한다거나 입장료 수입의 용처가 투명하지 않다는 등의 문제는 그다음 일이다. 언제까지 애꿎은 국민을 분통 터지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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