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개발한 차세대 원자로인 ‘APR1400’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최종 설계인증을 받게 됐다. 미국에서 우리 기술로 원전을 짓고,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NRC가 해외 원전기술에 단독으로 설계인증을 해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웨스팅하우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자국 기업에만 인증을 내줬다. 한국 원전의 기술력과 안전성이 최고 수준임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쾌거다.

APR1400은 한국 원전의 최초 수출 모델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4기에 적용됐다. 국내에서는 신고리 3~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6기가 건설 중이거나 완공돼 운영 중이다. 우리 원전 기술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은 그동안 국내 운영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바탕에는 원전 설계부터 건설 시공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문 인력, 부품 공급망 등 견고한 생태계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의 평가와 달리 국내에서 원전산업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중단됐고,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등 신규 원전 4기 건설은 백지화됐다. 이로 인해 원전 건설업체와 중소 부품업체는 ‘수주절벽’에 내몰렸고 전문 인력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다.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될 상황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APR1400보다 한 단계 위라는 평가를 받는 APR+를 신규 원전에 적용할 예정이었다. 더 많은 수출 기회를 잡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원전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에서 충분한 운영 경험을 쌓아 안전성을 검증받지 않고 해외 시장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외국 정상을 만나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면 그동안 쌓아온 원전 기술과 전문인력 노하우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원전을 폐기하면서 다른 나라에는 원전을 사달라는 얘기가 통하겠는가. 정부는 원전 수출을 늘리고 원전 해체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워 산업생태계를 살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해체는 적용되는 기술이 건설 및 운영과 근본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시장규모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우리 원전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