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불확실성 키우는 노동존중 정책
외환보유액이 4052억원(3월 말)을 넘어 사상 최고치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1월의 78억달러에서 크게 늘었다. 외환보유액을 이만큼 확충한 게 누구의 공(功)인지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달 21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현 정부의 성과로 내세웠지만 야당은 전 정부가 열심히 쌓은 덕분이지 않으냐는 얘기다.

여야의 입장은 다르지만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좋다는 단선적인 논리는 공통이다.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있는 한국에선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을 쌓고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ILO 핵심협약도 최저임금도…

중앙은행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시중에서 조달한 돈으로 달러를 사 모은 게 외환보유액이다. 외국돈을 보유하려면 이자율만큼 비용이 발생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에 따르면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데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0.6%인 7조8000억원가량을 쓴다(2014년 기준). 올해 한국 문화·체육·관광 부문 예산 총액이 7조1000억원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대내외 경제위기에 대비하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무작정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적정 수준’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편 ‘불확실성 줄이기’도 중요하다. 많은 나라 중앙은행이 다른 나라와 통화스와프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미리 약속한 금액만큼 외환을 빌려올 수 있어 외국돈을 직접 쌓아놓는 것보다 비용도 덜 든다. 예측 가능성이 높으면 비용은 줄고 이익은 커진다. 이 원리가 대부분 정부 정책에서 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은 생각해볼 점이 적지 않다.

노사 간 이해관계에는 적정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기본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국내법을 고쳐 노동권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에 경영계의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노사 관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노사 갈등도 더 키울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렇지만 의견 제시도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가 호되게 경을 친 한 경제단체 임원 얘기는 이럴 때 빠지지 않는다.

적정 수준·예측 가능성 '기대난'

최저임금도 그렇다. 당장 내년에 얼마나 오를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양대 노총은 최근 합동워크숍까지 열고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최저임금액 자체도 문제지만 언제 결정될지도 불확실하다. 매년 8월 5일까지 이듬해 적용될 최저임금을 발표해야 하는 현행법 규정은 간과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방안(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여야 대립국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주 52시간제도 지난해부터 법이 시행됐지만 탄력근로제 등 보완입법은 지지부진하다. 법 집행도 혼선이다. 당장은 근로시간 위반 사업장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는 않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계가) 사업주를 고소·고발할 땐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 고위관계자의 발언은 산업현장에서 불확실성과 우려를 더 키운다.

강화된 산업안전 규제도 적용 기준이 여전히 불명확해 적정 수준과 예측 가능성은 기대난이라는 지적까지 더해진다. 기업활동 위축, 일자리 감소라는 비용도 따져볼 일이다.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