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공수처 법안이 불러온 '김영란법의 추억'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3일 난데없이 ‘국회의원도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 등에 해당’이란 제목의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권익위는 자료에서 “국회의원도 국가공무원법상 선거로 취임한 공무원으로서 청탁금지법의 적용 대상인 공직자 등에 해당한다”며 “부정청탁금지 규정과 금품 등 수수금지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회의원 등의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에 한하여 부정청탁의 예외 사유에 해당할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영란법이 제정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 새삼 내놓은 유권해석이었다.

권익위가 이 같은 자료를 배포한 것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22일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대상 안건)에 올리기로 합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안이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안은 공수처에 대한 제한적 기소권 부여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수사 사건 중 판사·검사·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경우에 한해 기소권을 주고, 국회의원이나 다른 고위 공무원, 대통령 친인척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권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에 이은 국회의원 특혜’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김영란법은 2015년 제정 당시부터 국회의원만 느슨한 잣대를 적용받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권익위 설명대로 국회의원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긴 하지만, 부정청탁과의 경계가 모호한 제3자의 고충 민원 전달을 법 적용의 예외 사유로 인정받고 있다. 국회는 김영란법 통과 당시 국회의원의 사익 추구와 연관이 있는 ‘이해충돌 방지’ 부분도 삭제했다. 해당 조항이 법에 반영됐다면 ‘이해상충’ 논란이 벌어졌던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자도 제재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공수처 추진 과정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움직임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수처 기소 대상과 관련, “(국회의원을) 넣자고 끝까지 주장했는데 그것도 안 됐다”며 야당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2월 국민청원 답변에서 “국회의원 등 선출직을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야 4당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의원은 진작에 공수처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음을 유추할 수 있는 발언이다.

대통령 친인척이 공수처 기소 대상에서 빠진 것도 씁쓸한 대목이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 기능 중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견제가 빠진 것을 안타까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이 야 3당과의 합의 과정에서 강력히 주장했다면 과연 대통령 친인척이 기소 대상에서 빠졌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여야 4당은 국회의원, 대통령 친인척 등에 대해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공수처가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재정 신청을 하는 식으로 보완장치를 뒀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신청은 지금도 고소·고발인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제도다.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조차 “공수처법이 아니라 ‘판사·검사·경찰기소법’이라고 해야 한다”고 혹평했다. 공수처를 ‘공(空)수처’로 만들면서 개혁입법을 주장하는 것은 멋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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