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자유조선'에 투영된 디지털 격변 트렌드
북핵 문제에서 비롯된 한반도 정세 변화의 와중에 최근 ‘자유조선(自由朝鮮)’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2월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 대사관에 침입해 컴퓨터, 휴대폰 등을 탈취한 사건의 배후임을 공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28일 성명에서는 자신들을 “북한을 탈출해 세계 각국에 있는 동포와 결집한 탈북민의 조직”으로 소개하고 북한에 대한 반체제 활동을 지속할 계획임을 밝혔다.

북한 임시정부를 자처하는 자유조선은 가상화폐로 후원금을 모으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자유조선이 2017년 3월부터 현재까지 14.23비트코인(BTC), 6000여만원을 모금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에는 북한 해방 이후의 ‘자유조선’을 방문하기 위한 블록체인 비자를 발급하겠다는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개당 1이더리움(ETH), 15만원이 필요한 비자에 이미 신청서가 접수됐다고 전해진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북한 해커들이 전 세계에서 최대 8000억원의 가상화폐를 탈취했다고 분석했다. 북한 체제의 낙후성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 관련 기술 등 사이버 역량은 상당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가상화폐를 활용해 활동자금을 모으는 자유조선의 사례는 아날로그 세계가 붕괴되고 디지털 신질서가 형성되는 21세기의 단면이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였다면 본국 밖에 근거지를 둔 임시정부 형태의 조직은 세계 각국에 지부를 설치하고 조직을 구성해야 모금과 선전이라는 핵심 활동이 가능했다.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면서 활동해도 물리적 노출이 불가피하기에 신변 이상의 위험성도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서는 은밀성이 보장된 P2P(Peer to Peer·개인 대 개인) 네트워크인 가상화폐를 매개체로 전 세계에서 자금을 모은다.

또 소규모 비밀조직이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전파하려는 메시지를 글로벌 차원에서 순식간에 전파한다. 조직활동의 핵심인 모금과 선전활동을 위한 투자금도 거의 필요없이 기존 글로벌 디지털 인프라를 온라인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블록체인과 P2P가 결합돼 전개되는 디지털 격변의 트렌드가 북한의 반체제 조직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핵심은 글로벌 차원에서 개인 단위로 연결돼 형성하는 P2P 질서다. 블록체인 기술이 출현하기 전에는 중앙의 서버를 통해 개인이 연결됐고, 네트워크의 주도권은 중앙 관리자에게 있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분산된 개인들이 상호 연결돼 자생적 질서를 형성하게 됐다.

전자상거래의 경우 2016년 4월에 출범한 P2P 장터인 오픈바자(OpenBazaar)에서는 사업자가 없는 네트워크 참여자 간 거래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한다. 구매자와 판매자들이 직접 연결돼 거래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음악 저작권 관리분야도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P2P 방식으로 투명하고 정확하게 로열티를 산정하고 이더리움으로 분배하는 우조뮤직(UJOMusic)이 2015년 설립됐다.

금융분야에서는 물리적 연계가 전혀 없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가치를 교환하는 가상화폐라는 사이버 통화질서를 형성한다.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개인 중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메이저 미디어를 능가하는 구독자를 확보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페이스북, 트위터를 매개체로 과거 유력 언론사의 간판 기자보다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평범한 개인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격변의 가장 중요한 현상은 글로벌 차원의 P2P 생태계가 다양한 분야에서 중층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유통, 금융, 미디어 등 기존 산업의 양상을 변화시키면서 자유조선과 같은 정치적 조직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자유로운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글로벌 P2P 네트워크라는 메가트렌드의 본질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디지털 시대 개인과 조직의 미래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