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 논설위원
[천자 칼럼] '황홀한 김정은'

북한에서 개인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혈통’이다. 단연 최고는 북한 최고지도자와 그의 가계를 일컫는 ‘백두(白頭)혈통’이다. 북한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조선노동당 규약’은 백두혈통의 권력 승계와 숭배를 명문화하고 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우상화는 다른 공산독재국가와 차이가 많다. 옛 소련의 스탈린, 중국 마오쩌둥,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등은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요하는 데 그쳤다. 개인숭배를 넘어 우상화·신격화하고, 세습왕조를 구축한 것은 김일성 일가가 유일하다.

김일성 우상화는 1956년 반대파를 숙청한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1959년 5월 ‘조선노동당역사연구소’가 발간한 《항일 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김일성 신격화를 시도한 첫 사례다. 이 책은 김일성을 축지법을 써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모래로 쌀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만고(萬古)의 영웅으로 묘사했다.

김정일 우상화도 김일성 못지않았다.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1994년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자마자 “전세(前世)에도 없었고, 후세(後世)에도 다시 없을 위인 중의 위인”이라고 했다. “위대한 지도자께서는 축시법(縮時法)을 써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 미술사학자 제인 포털 전 대영박물관 부관장은 2006년 《통제하의 북한 예술》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는 자신을 신(神)으로 격상시킨 중국 진시황에 버금간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신격화에 본격 나섰다. 최근 펴낸 《위대한 인간 김정은》이라는 책에서 “그이(김정은)께서는 승마운동을 할 때는 최대 속력을 내어 거침없이 질주하셨고, 바다에 나가시면 쾌속정을 몰아 파도 위를 날듯이 달리셨으며, 땅크(탱크)를 타면 조정간을 틀어쥐시고 무쇠 철마를 질풍노도와 같이 몰고 가셨다”고 찬양했다. “그이의 인간상은 ‘하늘이 내신 분’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황홀하다”고도 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런 김정은에게 ‘전체 조선 인민의 최고 대표자’ 등 새로운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친근한 수령’을 표방하며 “수령을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면서 우상화 자제를 지시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당시 “노동당 기본 과업이 김씨 일가 위대성 선전으로 남아 있는 한 그들에 대한 신격화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대로다. 김씨 일가 우상화는 혈통 아니고는 정통성을 찾지 못하는 북한 정권의 한계를 보여줄 뿐이다.

synergy@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