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 시기에 순종적인 것도 문제
강압적 양육보다 자율성을 높여 주고
아이 감정 살펴 이해하고 공감해 줘야

김진세 <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전문가 포럼] 자녀가 말을 안 듣는다면

여전히 편견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이 많이 개선된 것은 요즘말로 ‘팩트’다. 과거엔 자살사고를 동반하는 우울증, 불안발작을 일으키는 공황장애, 환청이나 망상을 주증상으로 하는 조현병 등 심각한 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누구나 겪을 법한 흔한 문제의 상담 또한 심심찮게 마주치게 된다. 실연(失戀)의 아픔을 참기 힘들어, 반려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위로받기 위해, 결혼생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심지어 우울해 보이는 친구를 위해 생일날 상담을 선물(?)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이 심약하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심각한 정신적 또는 심리적 문제는 아주 작은 일상의 압박감과 부담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유난히 ‘자녀 문제’로 상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초등 4학년생 아이가 스트레스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고등학생이 되더니 무조건 자기 뜻대로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대학생활을 한다며 상의도 없이 자주 외박을 해서 말이다. “원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로 상담을 시작하기 일쑤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아이들은 원래 말을 잘 안 듣기 마련이다. 초등생 아이는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고 교우관계가 소중해지기 시작하면 또래와의 어울림이 부모와의 관계보다 중요해진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소위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에 접어드니 반항이 당연한 시기다. 청년이 되면 독립이라는 인생 과업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모 의견과 다른 경우가 생기게 된다. 오히려 말을 잘 안 들어야 하는 시기에 너무 순종적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다.

두 번째 흔한 경우는 부모의 양육태도 때문이다. 아이의 기질과 무관할 수 없지만 쉽게 순종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한동안은 부모의 설득과 강압에 의해 말을 듣는 척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이런 아이에게는 강압적인 양육보다 수용적이고 자율성을 높여주는 양육이 효과적이다.

정신과를 방문한 부모 중에는 아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레짐작하고 큰 걱정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료를 하다 보면 반항장애, 품행장애,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그리고 청소년 우울증과 같은 여러 질병 탓에 말을 안 듣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심각하게 부모와 마찰을 지속하거나, 비뚤어진 행동이 용납할 수준을 벗어난 과도한 일탈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말 안 듣는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아이가 부모의 의견과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먼저 아이의 감정을 살펴보고 공감해줘야 한다. 화가 나 있으면 “화가 많이 났구나. 정말 싫겠다” 등 공감을 표현하기만 해도 반항적 행동의 강도는 낮아진다. 그러고는 왜 그런지 물어보고 경청해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이 단계까지 왔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아이들의 의견에 반대부터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의 생각이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주자. 그런 식으로라도 의사표현한 것을 칭찬해주면 더욱 좋다. 그 단계를 지난 다음에 비로소 부모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네 생각이 그렇구나. 그런데 부모의 생각은 이러이러하다. 어떤 것이 좋은지 생각해보자”(지금까지는 이해, 공감, 경청, 그리고 인정 없이 다짜고짜 부모의 입장을 설득 또는 강요하는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제 아이에게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자율성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한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지혜로운 부모에게는 인내도 필요하다. 다시 한 번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첫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몇 번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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