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의 데스크 시각] 세계를 움직인 '우즈의 부활'
음모론적 상상 하나. 타이거 우즈(미국)가 쓴 ‘오거스타의 기적’ 뒤집어 보기다. 왜 하필 경쟁자들은 한결같이 같은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렸을까, 혹시 ‘선량한 승부 조작’이 아닐까. 이 의문이 상상의 출발이다. 챔피언조로 뛴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 토니 피나우(미국)는 물론 앞서 경기한 브룩스 켑카(미국), 이언 폴터(잉글랜드)가 마스터스 최종일 12번홀에서 모두 연못에 공을 집어넣어 더블 보기를 적어냈다.

만약 이들이 ‘어린 시절 우상’을 돕고 싶은 마음에 실수를 가장한 고의나 ‘미필적 고의’로 입수 샷을 쳤다면, 실제 이들이 절친이어서 우상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부활 드라마에 대가 없이 우정출연할 동기가 충분했다면….

거짓말 같은 '오거스타의 기적'

불순한 상상이 꼬리를 무는 건 마스터스 결과가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아서다. ‘잘 짜인 각본대로’ 찍은 영화를 연상케 한다. 최적의 타이밍에 경쟁자들은 휘청거린 반면, 숲속으로 날아간 우즈의 티샷은 나무를 맞고 페어웨이로 들어왔다.

40대 중년 우즈의 부활은 곱씹을수록 더 특별해진다. 20~30대 장타 괴물이 우글거리는 최고의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에서, 그것도 거짓말 같은 역전 우승을 예상한 이는 몇이나 될까. 2년 전만 해도 허리 통증으로 침대 위를 기어다니는 ‘퇴물 호랑이’였던 그다. 투어 23년 동안 허리 수술 네 번을 포함해 발목, 무릎, 팔꿈치 등 크고 작은 수술을 20차례 넘게 받아 부상 병동으로 불렸던 그는 통증이 심해지면 많은 약을 자주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약에 취한 그의 ‘머그샷(피의자 식별용 얼굴 사진)’이 온세상에 공개돼 치욕을 겪은 배경이다. 섹스 스캔들을 비난하는 대중의 뭇매도 모질었다. “나 같으면 진작에 인생 포기했을 것”이라는 중장년 남성들의 말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의 삶은 만신창이로 구겨졌다.

복귀 자체를 미스터리라고 한 게 그래서다. “마스터스 우승이 내 복귀의 완성”이라고 그가 말하자 아직도 자만에 취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그러고는 지난해 9월 5년 만에 복귀 우승(투어챔피언십)을 일궈내더니, 다섯 번째 마스터스 그린 재킷을 14년 만에 끌어안았다. 우즈 주연, 연출, 각본인 ‘1인 3역’ 웰메이드 모노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이다. 허세 같았던 예고우승은 ‘전설의 타자’ 베이브 루스(미국)의 예고홈런 같은 극적 장치가 됐다. 굴곡진 삶은 롤러코스터 같은 흥행 요소로 맛을 더했다.

우즈의 내일을 주목하는 세계

바닥까지 추락했던 그가 끝까지 잡고 있던 건 꿈이었다. 포기하지 않은 집념에 세계는 열광했다. 한결 깊어진 겸손이 팬들에게 진심으로 닿았다. ‘인간계’로 돌아온 우즈의 꿈을 팬들은 함께 이루고 싶어했다. 희망을 본 40대 중년들은 이제 우즈를 아이돌 삼는 ‘타이거 아미(army)’가 될 참이다. 몰리나리는 “이번 패배로 나는 더 많은 팬을 얻었을지 모른다”는 자조적 유머로 우즈의 우승을 축하했다.

많은 이들이 우즈의 부활에서 ‘전설의 골퍼’ 벤 호건(미국)을 떠올린다. 호건은 1949년 2월 교통사고로 골반뼈 등 11곳에 골절상을 입고 사경을 헤맸다. 다시 걷지 못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나왔다. 하지만 1년 만에 US오픈을 제패해 ‘메리온의 기적’을 완성했다. 호건은 병상에서 머릿속으로 샷을 날리며 때를 기다렸다. 우즈는 메이저 15승까지 14년을 기다렸다.

“잭 니클라우스를 이기겠다”는 세 살 꼬마 우즈의 인생 목표까지 4승이 남았다. 세계가 우즈의 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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