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사회역학의 치명적 오류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암, 심장병, 고혈압 등 수많은 질병에 시달린다. 아픔을 치료하려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질병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 만성질환인 당뇨병만 봐도 수없이 많은 원인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노화와 가족력, 과체중도 원인이다. 이는 개인 차원의 것들이다. 그런데 건강은 차별·고립, 가난, 고용불안 등 사회적 요인에도 좌우된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게 사회역학(社會疫學·social epidemiology)이다.

혈당 조절을 위한 약, 신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내시경, 줄기세포를 이용한 신체 기관 재생술 등 의료기술은 지난 10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그런 발전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충분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사회역학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가 골고루 건강을 누릴 수 있으려면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밝혀내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에 미치는 경제적·사회적 힘에 관한 연구가 198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나 국가 의료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성결혼 금지는 성소수자에게 정상적 삶을 방해해 건강을 해친다는, 낙태 금지는 잘못된 임신을 한 가난한 여성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그런 금지로부터 해방해야 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목할 것은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보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회역학의 인식이다. 치료 방법은 재분배를 통해 빈곤을 없애는 일이다. 가난에서 오는 고용·소득·노후에 대한 불안은 건강에 해롭고 자살도 불러온다고 한다. 자살·질병 예방과 치료 방법은 세금을 통한 정부지출이다.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작업 환경 때문에 그 계층의 건강도 나쁘다고 한다. 치료 방법은 국가가 세금으로 그런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소득분배가 고르지 못하면 개인의 건강도 위태롭다는 사회역학의 인식도 흥미롭다. 주민들이 건강을 골고루 향유하려면 소득 격차가 없어야 한다고 한다. 빈부 격차는 상대적 박탈감, 좌절, 질투 같은 감정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해 신뢰와 유대감의 상실로 이어지며 결국 심리적 불안으로 병이 생겨난다고 한다. 치료 방법은 역시 소득의 평등분배다.

요컨대, 건강돌봄에 대한 사회역학의 해법은 복지국가다. 이게 사회역학을 한국 사회에 도입,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말하는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국가다. 그런데 이런 국가는 높은 세금, 다양한 규제, 부의 끝없는 재분배를 요구하는 ‘사회주의’로 흐르기 쉽다.

사회역학은 1980년대 복지 해체, 탈(脫)규제, 자유무역을 핵심으로 했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자유주의 물결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빈곤, 실업, 소득 격차를 야기해 시민들이 평등하게 건강도 향유할 수 없게 된다는 인식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질병이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도 생겨난다는 논리를 개발한 데 대한 사회역학의 공로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실업, 빈곤, 양극화를 야기한다는 전제와 사회주의를 건강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사회역학의 치명적인 결함이 아닐 수 없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을 보라. 근로자 임금을 비롯한 시장 규제와 퍼주기 정책이 저성장과 실업, 빈곤과 양극화를 되레 악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유다. 큰 정부가 아니라 큰 시장이다. 규제를 풀고 세금과 정부 지출을 줄이는 등 경제적 자유를 확대할수록 고용도, 저소득층의 소득도 늘어난다. 사회역학의 논리대로 일자리·소득 기회의 확대는 저소득층의 불안을 해소하고 건강 증진에도 기여한다.

게다가 경제적 자유가 많은 나라일수록 삶의 수준, 기대수명, 교육 수준도 높아진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됐다. 인간의 건강돌봄에 필수적인 의료기술 발전도 자유의 산물이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는 그런 발전을 방해한다. 자유사회만이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된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김승섭 교수의 책 제목대로 《아픔이 길이 되려면》 필요한 건 자유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