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반대세력 누르기 위한 '逆색깔론'
일본 악마화·反美 이어져 외교 고립 자초
미래 위해 일본과 전략적 공조 복원해야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
[다산 칼럼] 청산해야 할 '관제 민족주의'

올해 정부는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크게 기념하고 있다. 북한과 대대적인 공동행사도 열려 했지만 북한의 거절로 무산됐다고 한다. 이념적으로 북한은 김일성이 했다는 빨치산 활동을 ‘진정한’ 독립투쟁으로 역사화하고 선전해왔다. 대신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계승’을 깎아내렸다. “임정(臨政)은 망명자 클럽일 뿐” “밤낮 앉아 파벌 싸움이나 하는 무능무위한 사람들”이라고 폄훼했다. 북한식 ‘관제(官製) 민족주의’ 역사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경축사로 우리 사회에 관제 민족주의가 이슈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이는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라며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고 규정한 것이다. 빨갱이라는 용어가 일제 잔재이므로 청산돼야 하는데, 일제가 만들고 보수세력이 이용했으니 둘 다 청산돼야 마땅하다는 논지다.

이런 관제 반일(反日) 민족주의 이념에 따르면 친일파와 보수세력은 하나로 연계되고, 결국 친일파 청산과 보수세력 청산은 동일한 정치적 목표가 된다. 나아가 보수세력은 반(反)평화 세력, 반통일 세력으로 프레이밍(framing) 된다. ‘역사의 정치화’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는 일제시대에는 빨갱이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았고, 6·25전쟁 시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사실관계의 부정확성을 지적했다. 다른 학자는 “관제 민족주의의 전형적 모습”이라며 “지극히 갈등적인 문화 투쟁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반대세력으로 진보세력이 빨갱이가 돼버렸던 역사라고 비판했던 게 다시 거꾸로 보수세력이 ‘친일파’가 돼 적폐 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의 정치화 탓이다. 정치적 반대세력이기에 보수세력 전체가 청산 대상이 되는 정치라면 민주주의의 후퇴다.

일본과의 관계도 동일하다. 우리 민족에게 행한 과거의 침탈 행위만을 생각해서는 미래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핵심은 우리의 아픈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런 아픔을 초래한 우리 지도자의 무능과 부패 역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탓만 해서는 나의 발전이 없다. 진정한 극일은 내 탓도 해야 가능하다. 또 과거 일제가 나빴으므로 지금의 일본도 나쁘다는 인식은 역사의 퇴보다. 이런 인식에 근거한 외교정책으로는 외교적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바로 미국으로 달려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 지배를 확약받고, 미국은 필리핀을 얻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비핵화 조치에서 철저하게 국익을 따지고 들었다. 이렇게 국제정치의 세계는 감정이나 희망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관제 반일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핵심은 과거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이웃 국가를 ‘악마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있다. 관제 민족주의의 가장 극단이 히틀러의 등장, 독일 나치의 독일민족 피해의식, 그리고 독일민족 순혈주의가 만들어낸 유대인 학살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임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2년간 일본에 위안부 사과를 요구하며 중국으로 기울었지만 그 결과는 ‘사드 보복’이었다. 반일 민족주의가 반미로 연결돼 초래될 외교적 고립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우리의 ‘관제 민족주의’와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가 연대하는 미래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찍힌 또 하나의 방점을 주목한다. ‘체제를 달리하는 연방제 통일론’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없다. 또 ‘우리 민족끼리’ 연대해 경제 교류를 하면 비핵화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박근혜, 문재인 정권 초기마다 반일 민족주의가 국가를 집어삼키고 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의 관제 민족주의와 연계되면 우리의 이념적 정체성마저 삼켜버릴 수 있다. 한국을 국제사회의 외톨이로 만드는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보수-진보 대립과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관제 반일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과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일본과의 전략적 공조를 복원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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