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일본이 못마땅하고 언짢더라도
최근 더 엉킨 관계 풀어 미래 도모해야

국중호 < 日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세계의 창] 日 '천황 교대'는 한·일관계 개선 기회

다음달부터 일본 천황이 바뀐다. 새 천황 즉위와 함께 사용할 연호(일본에선 겐고(元號)라 함)도 ‘레이와(令和)’로 바뀐다. 중국 고전을 출처로 하던 연호 선정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일본 고대 시가(詩歌) 모음집인 만요슈(萬葉集)에서 글자를 따왔다. 레이와는 ‘좋은 달(令月:‘레이’게쓰)에 바람이 부드럽다(風和: 후‘와’)’라는 구절에서 고른 말이다.

일본에서 천황 교대나 연호 교체는 아주 대대적인 행사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이에 대해 갖는 생각을 다 헤아릴 수 없다. 대부분 일본인은 국가가 연출하는 행사에 거부감 없이 반응한다. 더군다나 오랜 전통의 역사와 권위에는 저항 없이 순응한다. 천황은 신화에 얽힌 긴 역사와 절대 권위를 지닌다. 일본 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상징 천황’으로서의 지위를 규정하고 있다. 천황이 ‘그 자리에 계시다’는 자체가 일본인들에게 크나큰 안도감을 준다.

물러날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자연 재해 피해자 및 전몰자 위문 등으로 국민을 보듬으며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다져왔다. 국민에게 내심으로 다가가며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되려 했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일어나 망연자실할 때 천황은 재해지역을 돌며 무릎을 맞대고 위로하며 격려했다. 사람들은 “감동했다, 더 열심히 일하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이런 반응은 노동 투입의 질이 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산성이 거창하게 높아지는 변화라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곳에서 성심껏 맡은 일을 하고 협력하며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의 변화다.

평상시 일본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천황이기에 자신들이 천황을 향해 어떤 주문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내려주는 은덕을 그저 고맙게 받아들이려 한다. 이럴진대 외국인, 하물며 한국의 정치인들이 뒤엉킨 한·일관계를 풀려면 “천황이 사죄하면 된다”고 하는 언질은 일본인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게 한다. “복(福)은 안, 귀신은 밖”이라며 안과 밖을 구분하는 덕담을 나누는 곳이 일본이다.

일제시대 한반도를 수탈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일본을 떠올릴 때면 기분이 언짢아질지 모른다. 과거사에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다며 일본을 못마땅해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천황의 사죄’와 같은 발언은 일본에선 금기 사항이다. 한국에 아무런 실리도 없고 긁어 부스럼일 뿐이다.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악화로 한국 제품을 외면케 해 경제 살리기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상대방의 사고와 행동방식이 어떤지를 깊숙이 아는 것도 힘이다. 일본에 대해 못마땅하고 언짢은 심정이 자리한다 하더라도 내실을 다지고 힘을 키워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실력을 키워 한국에도 큰 실익을 가져오게 하고 싶다면 정치나 외교 측면에서 일본을 어르는 역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천황 교대와 연호 교체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다시 얻기 힘든 기회다.

이번 천황 교대는 현 아키히토 천황의 사후(死後) 승계가 아니라 생전(生前) 양위이기 때문에 일본을 축제 분위기로 이끄는 즉위식이 될 것이다. 새 천황 즉위 ‘향연 의례’에는 해외 귀빈도 초청한다. 한국도 그 격에 맞는 인사가 참석해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아량을 보이며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는 것이 성숙한 자세다. 그러면서 오는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 활용과 함께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끄는 분위기 조성이 현명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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