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희망의 사다리 놓는 금융
필자가 신입사원이던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초등학교를 찾아 아이들의 장학적금을 수납하곤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줄을 지어 상기된 얼굴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순서가 된 아이들은 소중하게 모은 용돈과 통장을 내밀었다. 입금액이 적힌 통장을 다시 손에 쥐여주면 아이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어른인 나도 그 미소에 절로 웃음짓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통장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전 국민적으로 저축 열기가 대단했다. 사람들은 한 푼 두 푼 알뜰하게 돈을 모아 자녀 교육이나 내집 마련 같은 꿈을 하나씩 일궈갔다. 은행에 모인 돈은 기업에 투자돼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금융은 이처럼 사람들의 꿈을 현실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가 살아 숨쉬도록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이런 금융을 두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교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은행을 찾는 고객은 각자 다양한 꿈을 품고 온다. 은행 직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고객의 소중한 꿈이 이뤄지도록 도와줄 때다. 은행 덕분에 성공했다거나 꿈을 이뤘다는 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치 내 일인 양 힘이 나고 즐거워진다.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고향에서 딸기농장을 꿈꿔온 한 청년이 떠오른다. 그는 오랜 기간 재배법을 연구하며 스마트팜을 준비해왔지만 정작 농장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구할 수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농협은행을 찾아 영농 컨설팅과 함께 자금을 지원받았고, 소망하던 농장을 운영하게 됐다. 고객이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금융의 진정한 힘 아닐까.

최근 강원도의 대형 산불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실의에 빠진 이재민을 돕기 위해 곳곳에서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농협에서도 피해 지역을 방문해 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일손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피해 복구를 위해 낮은 이자로 자금을 지원하고 임직원이 모은 성금을 전달했다. 그분들이 하루 속히 삶의 터전을 되찾길 기원해본다.

금융의 영어 단어인 파이낸스(finance)는 ‘목표’를 뜻하는 라틴어 피니스(finis)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이 목표(꿈)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금융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꿈을 품고 그 꿈이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금융이 이런 꿈을 이뤄주는 ‘희망의 사다리’가 돼 한국 사회가 더 밝고 행복해지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