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저출산은 국가 생존의 위기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작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급락했다. 전쟁 때나 발생하는 미증유의 국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작년 신생아 수는 32만6900명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최저치다. 올해부터 사망자가 신생아 수를 앞지르는 인구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시작된다. 2006~2018년 143조원을 투입했지만 급격한 저출산 흐름을 막지 못했다. 예산의 80%가 보육과 양육에 집중됐고, 현금 지원을 위주로 해 출산을 촉진하는 인프라 구축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이 많다.

저출산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5%가량을 쏟아부어 1.8명 선의 출산율을 회복했다. 일본은 2005년 1.25명에서 2017년 1.43명으로 매년 조금씩 끌어올렸다. 아베 신조 정부는 ‘1억 총활약상’을 임명하고 우머노믹스를 아베노믹스의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반면 중국은 2015년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폐기에도 불구하고 출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출산 모멘텀이 한번 꺾이면 흐름을 뒤집는 것이 녹록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복지 위주 정책이 실패했다. 교육, 고용, 주거, 복지, 양성평등을 아우르는 종합 대책이 추진돼야 정상적 출산율 회복이 가능하다. 돈을 대폭 투입해도 출산율 급등은 불가능하다. 돈이 아니라 ‘삶’ 중심의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금 살포 대책은 여전하다. 여성가족부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5세에서 7세로 확대했다. 경기 양평군은 첫째 아이 출산장려금을 300만원으로 올렸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지방자치단체 예산 8992억원의 78.3%가 현금 지원이다. 95%가 보편적 복지사업으로 무차별 지원 방식이다. 이제는 ‘돈 주면 애 낳겠지’ 식의 편의주의적 발상을 버려야 한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의 연구는 유배우자 출산율이 2명 이상이고 기혼여성이 미혼여성보다 출산 의향이 높음을 보여준다. 신생아의 98% 이상이 법적 부부 사이에서 출생한다. 혼인율이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사실과 저출산 현상은 상관성이 높다. 초혼 연령을 앞당기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가족친화적 환경 구축이 중요하다. 일·가정 양립 정책이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의 높은 고용률과 출산 후 직장 복귀율을 견인했다. 1.76명의 높은 출산율을 보여주는 스웨덴은 가족친화적 환경과 양성평등의 성공 사례다. 480일 유급 출산휴가, 90일 배우자 휴가가 효자 노릇을 했다. 글로벌 기업은 여성친화적 정책을 적극 채택하고 있다. 게이츠재단은 6개월 유급 휴가와 2만달러 장려금을 지급한다. 넷플릭스는 1년간 유급 휴가를 허용한다. 유니레버는 최저 16주 휴가 혜택을 준다. SK텔레콤, 롯데 등도 재택근무제, 남성 육아휴직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결혼·출산 페널티가 매우 크다. 약 60% 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다. 여성가족부는 작년 3328개사를 가족친화 인증기업으로 지정했다. 대기업은 93.1% 육아휴직제를 시행하지만 중견기업은 84.4%, 중소기업은 39.9%에 불과하다. 일·가정 양립이 착근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양성평등이 시급하다. 최근 방한한 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 총재는 여성의 임신·출산 권리 의식이 저출산 문제의 돌파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답답하다. 국제노동기구의 ‘성평등을 향한 도약’ 보고서에 따르면 저임금 여성 근로자 비율은 35.3%로 OECD 32개국 중 최고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8년 성 격차 지수는 149개 대상국 중 115위다. 중국 103위, 일본 110위보다 뒤처졌다.

저출산으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2057년보다 훨씬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보험률 상승, 건강보험 재정수지 악화가 불가피하다. 저출산과 인구절벽은 한국이 본격적인 수축사회(收縮社會)로 진입했다는 경고다. 출산율 회복은 지속가능 사회의 전제 조건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