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연예인 기부 릴레이, 그게 진짜 영향력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을 돕기 위한 연예인들의 기부 릴레이가 좀처럼 멈추지 않을 기세다. 산불 발생 다음날부터 시작된 기부 동참자는 엿새째인 10일 현재 100명을 넘어섰다. 첫 테이프는 ‘기부천사’ 아이유가 끊었다. 아이유는 지난 5일 “산불 피해 지역 아동들을 위해 써 달라”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1억원을 기탁했다. 피해 지역의 고통을 고려해 이날로 예정됐던 아이유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페르소나’ 공개 날짜도 미뤘다. 이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구호단체에 기부 소식이 꼬리를 물었다.

팬들의 동참 이끈 '선한 영향력'

기부에 동참한 연예인들의 면면도, 상황도 다양하다. 강원 횡성 출신인 그룹 슈퍼주니어의 김희철과 원주가 고향인 워너원 출신 윤지성은 일찌감치 성금을 보냈다. 비인두암으로 투병 중인 배우 김우빈, 군 복무 중인 그룹 하이라이트의 윤두준과 밴드 씨엔블루의 정용화 강민혁 이정신, 그룹 비투비의 서은광도 힘을 보탰다.

가수 겸 배우 이정현, 그룹 클릭비의 김상혁·송다예 부부는 결혼식 당일인 지난 7일 바쁜 가운데서도 기부금을 보냈다. 다음달 결혼하는 가수 알리는 “예비신랑과 의논해 예단비를 기부하기로 했다”며 2000만원의 기부증서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다. 차인표·신애라, 조정석·거미, 이병헌·이민정, 조우종·정다은 등은 부부 명의로 성금을 보냈다.

고액 기부자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할 수 있는 1억원을 쾌척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코미디언 유세윤은 아들이 내놓은 용돈 3만원을 보탠 1003만원을 기탁해 눈길을 끌었고, 걸그룹 블랙핑크는 제니, 리사, 지수, 로제 등 멤버 4명이 1000만원씩을 내 4000만원을 기증했다. 한 종편 채널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트로트 가수 김양은 오랜 무명 생활로 넉넉하지 않은데도 300만원을 내놨다. 익명의 기증자도 있었다.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따르면 여배우 4명과 듀엣 가수 한 팀은 조용히 돕고 싶은 진심이 왜곡될까봐 익명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일탈 연예인과 극명하게 대비

스타들의 기부 릴레이에는 팬들까지 동참해 나비효과를 내고 있다. 팬들이 각자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것이다. 그룹 워너원 출신인 강다니엘 팬덤이 1억원 넘게 기부한 것을 비롯해 엑소, 방탄소년단, NCT, 마마무, 뉴이스트, 몬스타엑스 등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활발하게 기부 릴레이를 잇고 있다.

스타들의 이런 선행 물결은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 성매매 알선, 마약 투약, 경찰 유착 등 온갖 혐의와 추문으로 줄줄이 추락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그에 따른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추문에 연루된 밴드 FT아일랜드의 최종훈은 “특권의식에 빠져 있었다는 걸 느끼고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스타들의 일탈에 대해 원로배우 이순재 씨는 최근 “연예인에게 특권이 어디 있느냐”며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연예인은 행동 자체에 전파력과 영향력이 있으므로 공인이 아니면서도 공인이다. 그래서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

어디 연예인뿐이겠는가.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잘 쓰면 선이 되고 잘못 쓰면 악이 된다. 같은 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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