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 금융부 기자 daepun@hankyung.com
[취재수첩] '관치의 덫'에 걸린 카드사들

금융위원회가 지난 9일 발표한 카드사 경쟁력 제고 방안에 대해 한 카드사 관계자는 “환자가 죽어간다는 차트를 꺼내놓고도 처치하지 않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위 발표 자료에는 몇몇 카드사의 레버리지 비율(작년 말 기준)이 한계 수준인 6배에 달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금융위는 이런 ‘위험 신호’를 외면했다. 레버리지 비율(총자산/자기자본) 한도를 현행 6배에서 10배까지 완화해 달라는 카드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레버리지 한도가 높아지면 카드사들은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다. 카드 수수료 인하 조치에 따른 충격도 어느 정도 상쇄 가능하다.

금융위는 대신 총자산에서 중금리 대출과 빅데이터 관련 비용을 빼주는 방식으로 레버리지 비율에 숨통을 틔워주겠다고 했다. 카드사들은 곧바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평균 금리가 연 15%대인 카드론을 11%대인 중금리 대출로 바꾸면 레버리지 비율은 소폭 낮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수익성은 이자율 차이만큼 나빠진다. 빅데이터 관련 사업에서도 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 위기에 내몰린 하위권 카드사들은 아예 투자할 여력이 없다.

‘레버리지 규제 한도에 근접한 카드사는 증자 또는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하면 된다’는 금융위 설명에도 카드사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업황이 침체되고 있어 증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회계기준 변경으로 영구채 카드도 꺼내기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 ‘영구채를 회계상 자본이 아니라 부채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일부 카드사는 금융위에 요구할 게 없다고 체념하고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반성도 나온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의 카드 수수료를 인상할 수 있도록 당국이 힘써 달라고 요구하면서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라는 반(反)시장적 지시에 반시장적인 요구로 되받은 것이 패착이었다는 자책이다.

세원 투명화를 이유로 정부가 1998년 도입한 ‘카드 의무수납제’는 한국을 ‘카드결제 천국’으로 만들었다. 반대급부로 ‘수수료 인하’와 같은 ‘관치(官治)’의 명분도 커졌다. 당분간 카드사들은 각자도생 말고 출구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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