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는 한국 기업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직접적 사인이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조 회장을 비롯해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공권력의 무차별적이고 집요한 조사와 수사가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임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7일 국민연금의 반대로 대한항공 주총에서 등기이사직을 박탈당한 뒤 병세가 급속히 악화됐다는 게 한진그룹 측의 설명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와 그의 죽음 간에 인과관계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조 회장 일가를 향한 권력의 ‘횡포’가 칠순의 경영자를 나락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4월 조 회장의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 사건 후 1년간 경찰과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11개 기관이 동시다발적으로 25차례에 걸쳐 조 회장 일가를 벌집 쑤시듯 뒤졌다.

조 회장과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첫째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둘째 딸 조 전 전무 등이 14차례나 소환과 영장실질심사 등으로 포토라인에 섰다. 대한항공 등 계열사는 수사기관으로부터 18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수사기관이 성과를 못 내자 이번에는 국민연금이 나서 조 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끌어내렸다. 지병을 가진 칠순의 노인이 이런 일을 당하고도 멀쩡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정작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물컵 갑질’ 사건은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 조 회장과 그 자녀들은 소위 재벌 2, 3세로 이른바 대표적인 ‘금수저’들이다. 이들의 행동 중엔 일반인의 시각에서 볼 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여론이 나쁘다고 해서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일가를 ‘초토화’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공과가 모두 있게 마련이다. 위법 사항이 드러나면 법적 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다. 단지 재벌이고 재벌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괘씸죄’를 적용해 마녀사냥, 인민재판 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일종의 ‘학대’요 ‘폭력’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새 정부 들어 옥고(獄苦)를 치렀다. 재판이 진행 중인 이들은 여차하면 다시 수감될 수도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재벌들, 한 번 걸리기만 해보라”는 식의 정서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폭력’을 계속 부추기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