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부유세라는 '오래된 환상'
영국 노팅엄에 전설적인 의적(義賊) 로빈 후드 동상이 있다.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그를 기념하는 조각품이다. 이 ‘의로운 도적’의 활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상인과 부유층이 약탈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해져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들게 됐다.

이를 ‘로빈 후드 효과’ 혹은 ‘로빈 후드 법칙’이라고 부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유럽의 ‘부유세 논쟁’을 분석하면서 비유로 든 사례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를 강제로 재분배하면 오히려 전체적인 사회적 부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영국은 노동당 집권 시절 부자들에게 80% 넘는 소득세율을 적용했다. 이 때문에 스타 록밴드들이 ‘세금 폭탄’을 피해 해외로 떠났다. 스웨덴에서도 이민 사태가 터졌다. 세계적인 가구업체 이케아의 회장이 수백억달러를 해외 재단으로 옮긴 게 대표적이다.

프랑스 또한 최고 75%의 부유세를 매겼다가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실업률이 10%까지 치솟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국민 배우’ 알랭 들롱과 제라르 드파르디외, 포뮬러원(F1) 카레이서 세바스티앵 뢰브 등이 국적을 옮겼다.

프랑스 학자 에릭 피셰에 따르면 프랑스의 부유세 부과로 지난 10년간 연 36억유로(약 4조6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혔지만, 국적 포기 등으로 사회적 손실이 연 70억유로(약 9조원)나 발생했다. 이 기간 이탈한 프랑스 자본이 2000억유로(약 256조원)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놀란 유럽 국가들은 부유세를 잇달아 폐지했다. 1995년 기준으로 부유세를 도입했던 15개 OECD 회원국 가운데 11개국이 이 제도를 없앴다. 남은 국가는 스위스 노르웨이 스페인 벨기에 4개국에 불과하다. 부유세 도입의 배경이 됐던 부의 집중도는 완화된 게 아니라 더 심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부유세와 다른 이름의 ‘사치세’는 부작용이 더 컸다. 부자들이 즐기는 요트와 골프 등의 여흥거리에 세금을 물리자는 취지였지만, 요트 제작 현장이나 골프 관련 산업 근로자들만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은 한때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9.6%로 높였다가 최근 35%로 다시 내렸다. 이 와중에 야당 상원의원 몇몇이 부유세 도입을 외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의식한 행보다. 한국에서는 뜻밖에도 집권 여당 의원이 부유세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경제 부총리가 난색을 표하는데도 막무가내다. OECD라면 이런 경우를 무엇에 비유할까. ‘홍길동 효과’라고 할까, ‘임꺽정 법칙’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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