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천자 칼럼] 무오류 콤플렉스

완전함과 무오류를 향한 전진은 인간세상의 숙명일 것이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조차 사회주의의 인기가 치솟는 현상도 이상향에 대한 추구를 잘 보여준다.

완전함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처음 찾아낸 대상은 신이다. 신의 품에서의 ‘구원’이 오랫동안 인간의 머리를 지배했고, 종교는 그 틈을 공략했다. 신을 통해 무오류를 꿈꾼 인간들의 시도는 문명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작용도 했다. ‘별의 운동궤도는 원’이라는 중세시대 ‘천문학 철칙’이 깨진 과정이 잘 보여준다. 신적 세계관의 사람들은 ‘우주의 본질은 완전성이고 도형 중에서 원이 가장 완전하다’며 별의 궤도를 원으로 단정했다. “행성궤도는 태양을 초점으로 한 타원”이라는 ‘케플러 제1법칙’이 17세기 초에 나오고서야 이 선입견은 깨졌다.

종교의 무오류성을 국가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다.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 레닌이 죽자 스탈린은 ‘존경받는 혁명 동지’로 불리던 그를 ‘무오류의 혁명가’로 신격화하고 후계자인 자신의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사회주의권에서는 ‘인민은 국가의 영도를 받고, 국가는 당의 영도를 받고, 당은 당 중앙의 영도를 받는다’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무오류의 공산당은 절대 틀릴 수가 없다는 이런 논리는 북한으로 들어가 ‘수령 무오류론’을 뼈대로 한 전대미문의 사교체제를 만들어냈다.

존 스튜어트 밀은《자유론》에서 “무오류성이라는 편견에 빠져서 다른 의견에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재앙”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도 무오류성의 진격이 만만찮다. 엉뚱하게도 SNS가 촉매제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지식과 정보를 편식하다보니 SNS가 소통의 통로가 되기보다 집단적인 무오류성 강화기제로 치닫는 모습이다.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복 경호원이 기관총을 드러내 논란이 커졌다. 민생탐방의 현장치고는 위협적이어서다. 청와대는 “이전 대통령 때도 비슷했다”며 사진까지 제시했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어떤 경호가 맞느냐는 문제를 떠나 일체의 사과를 거부하는 듯한 태도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두 주일 전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건넨 문 대통령의 인사말 실수 때도 그랬다. ‘슬라맛 소르’와 ‘슬라맛 쁘땅’ 용례를 두고 소수학설을 앞세워 청와대는 ‘실수 인정’을 하지 않았다.

문제 제기에 대해 “우리는 DNA가 다르다”는 식의 반응은 곤란하다.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확증 편향’에 빠져 공감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강조되는 이유다. 지적이 달가울 리 없지만 무오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여론에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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