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천자 칼럼] 말레이語와 인도네시아語

우리가 동남아시아라고 뭉뚱그리는 나라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신(新)남방정책’에다 매년 수백만 명이 관광해 잘 안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족 언어 문화 종교가 제각각이라 동남아를 아우르는 전문가도 거의 없다.

그런 와중에 또 ‘외교 사고’가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와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친숙함을 표한다고 건넨 오후 인사말 ‘슬라맛 소르’가 문제였다. 이는 인도네시아어이고 발음도 ‘슬라맛 소레(selamat sore)’가 맞다고 한다. 말레이어로는 ‘슬라맛 쁘땅(petang)’이 오후 인사말이다.

사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합쳐서 ‘마인어(馬印語)’라고 부를 만큼, 실질적인 동일언어로 분류된다. 다만 어휘가 30%쯤 다르고 표기법도 다소 차이가 있다. 각기 영국과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은 탓이다. 고영훈 한국외국어대 마인어과 교수는 “두 언어는 우리말과 북한말 정도의 차이”라며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뿌리’라는 친밀감이 있지만 1960년대 서로 대립했던 미묘함도 있다”고 설명한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는 향신료무역의 중심지였던 말라카 지역 언어 ‘믈라유(Melayu)어’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의 공용어다. 사용인구가 2억2000만 명으로 세계 5위다.

2억7000만 인구의 인도네시아가 지금도 다수 언어인 자바어 대신 말레이어를 국어로 삼은 건 1928년 젊은 지식인들이 ‘하나의 조국·민족·언어’를 내건 ‘청년의 맹세’ 선언을 하면서다. “언어에는 카스트(계급)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경어법이 거의 없다.

언어가 같아도 인도네시아에선 인도네시아어, 브루나이에선 브루나이어로 불러줘야 실수하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를 공용어로 쓰면서 국가(國歌)는 말레이어로 부른다. 홍콩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가 인도네시아 민요 ‘배를 저어가요(Dayung sampan)’라는 점도 흥미롭다.

동남아지역 대사를 두루 지낸 전직 외교관은 “신남방정책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대통령 방문 전에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고, 긴 시야에서 젊은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마인어나 베트남어, 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고작 두세 곳뿐이다. 그래도 한국외국어대의 경우 마인어과 정원 30명에 제2 전공자가 100명이 넘을 만큼 관심이 일고 있다니 반갑다.

동남아를 알면 알수록 빠져들면서, 동시에 우리의 무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청와대는 외교 결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모르면 물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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