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알제리 딜레마
‘아랍의 봄’이 2011년 들불처럼 번져갈 때 이슬람권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다. 장기독재와 부패, 빈곤 심화와 격차 확대, 살인적 물가, 청년실업 등으로 불붙은 대중의 분노가 철권 독재자들을 몰아냈다. 벤 알리(튀니지), 카다피(리비아), 무바라크(이집트), 살레(예멘) 등 20~40년 철권정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도화선이 된 튀니지만 ‘재스민 혁명’을 이뤘을 뿐, 거꾸로 더 센 독재로 회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전과 난민, 경제난, 종파 대립, 근본주의 등이 후유증으로 남겨졌다. 준비 안 된 ‘아랍의 봄’이 ‘아랍의 겨울’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아랍의 봄’이 공화정 국가에 한정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은 막대한 왕실자금 덕에 국민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화정이면서도 ‘아랍의 봄’을 비켜간 유일한 나라가 있다. 알제리다.

알제리에서 민주화 시위가 없었던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8년간 독립전쟁 끝에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알제리는 민족해방전선(FLN)의 일당 독재 속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무장투쟁과 테러, 쿠데타, 내전 등이 30여 년간 어지럽게 이어졌다. 1990년대 내전에선 민간인이 15만 명 넘게 희생됐다. 내전의 상처가 국민들에게 안정을 먼저 생각하게 한 것이다. 1999년 선거로 집권한 부테플리카 정권의 억압통치도 불만이지만 내전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공감대였다.

그런 알제리에서 지난 주말 사상 최대인 5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0년째 집권 중인 압둘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82)의 5선(選) 도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부테플리카는 2013년 뇌졸중으로 거동조차 불편하다. 알제리 정부는 내달 18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학생 시위를 잠재우려고 10일 조기 봄방학(본래 21일)을 명령했다.

정권이 장기독재로 변질돼 갈 때 안정과 민주화는 양립이 힘들어진다. 여기에 ‘알제리의 딜레마’가 있다. 억압통치라도 안정이 우선인가,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감수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다. 독재자를 몰아내도 더 큰 악(惡)이 들어선 주변 국가들을 목격했기에 더 어렵다. 민주주의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이를 구현할 정신적·물적 토양이 더 중요하다.

알제리는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모리타니 등과 함께 ‘마그레브(Magreb)’ 지역으로 분류된다.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 서쪽’을 뜻하는 마그레브는 이슬람 문화권이면서도 고대부터 유럽과의 교류가 활발했고 민주화 열망도 상대적으로 높다. 알제리 사태는 이슬람권뿐 아니라 유럽에도 중대 관심사다. 알제리 국민들이 슬기롭게 딜레마를 극복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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