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사다리 사용까지 금지하는 나라
며칠 전 신문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작은 기사 하나를 봤다. 올해부터 공사와 작업 현장에서 사다리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규제하나 싶었다.

물론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다가 떨어져 부상을 입는 사례가 많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 정부가 노동자의 안전과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업장 특성에 따라 사다리를 꼭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특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구나 형사처분까지 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대상으로 보는 관료주의의 잔재이며 치명적 자만이다.

우리 정부 관료들은 정부가 법으로 정하면 국민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것 같다. 그런 의식은 정부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 만능주의’에 근거한다. 그러나 정부가 만능일 수는 없다. 정부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공무원 역시 불완전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인데, 공무원들은 경제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보다 정보가 훨씬 제한돼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원하고, 어떤 생산방식이 효율적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경제활동 과정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이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공무원이 얻는 정보는 경제활동 참여자보다 훨씬 제한돼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지 못한다. 자연히 경제활동에 대한 정책 대응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킨다. 국민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 간섭과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의 개입과 간섭은 이 정부 들어와서 부쩍 심해졌다. 무산되기는 했지만 최근 논란을 일으키며 국민적 저항을 받았던 성인사이트 전면 차단을 비롯,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진행하는 탈(脫)원전 정책,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획일적인 주52시간 근로제, 농민들이 물 부족을 호소하며 반대함에도 4대강 보를 해체하려는 것, 기업에 대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 중지 권한을 확대하고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등 사고 책임을 원칙적으로 원청업체가 지도록 하는 산업안전법 개정안, 기업 활동을 옥죄는 각종 노동규제와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수두룩하다.

이런 경향은 매우 위험하다.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많아지면 그 종착지는 전체주의인 국가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국가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자유가 줄어 정부 권력자의 명령과 통제를 받게 된다. 그 사회에서는 개인의 창의적인 활동과 노력보다는 정부 권력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해진다. 그러다 보면 정부 권력을 잡은 사람과 그 주변에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부귀영화를 누린다. 자연히 구성원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 국가가 점점 쇠퇴하다가 종국에는 존립까지 위협받는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과 독일의 나치 체제가 그랬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그런 운명을 겪었다.

내리막길로 치닫는 한국 경제가 불안하기만 하다. 기업의 경제활동이 극도로 위축되고, 일자리가 파괴되고,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기업 도산이 속출하고, 빈곤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있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 늦기 전에 정책 방향을 돌려 정부가 국민의 생활과 경제활동에 간섭하고 개입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다.

사다리 사용 금지는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사소한 것에까지 정부가 개입한다는 데 위험성이 있다. 사다리 사용 금지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국민들의 경제활동과 기업 활동에 깊숙이 간섭하고 규제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