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긴했지만 한국블록체인학회 신년 하례식이 열렸다. 2019년도 학회를 새롭게 구성하고,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 발전에 산학연이 함께하자는 결의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장 관심을 모은 주제는 지난해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위한 대형 연구개발(R&D)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초부터 블록체인을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로 판단하고 학계, 연구계 및 산업체의 의견을 수렴, 4000억원 규모의 중장기 R&D 사업안을 준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했다. 과기정통부가 이런 대규모 R&D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은 블록체인이 가상화폐를 넘어 공공, 헬스케어, 물류, 유통 등 산업 전반의 성장과 혁신을 가져올 기술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도 2027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인 8조달러가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발생하리라고 전망할 정도로 블록체인은 파급력과 시장성이 매우 큰 산업으로 판단돼 이에 대비한 R&D 사업을 기획한 것이다.

블록체인산업은 성장 가능성도 의미가 크지만 무엇보다 그 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혁신과 파괴력에 더 주목해야 한다. 기술적 의미로 보면 블록체인 기술은 제2의 인터넷 혹은 새로운 인터넷 기술이다. 기존 인터넷 기술은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으로 대변되는 소수가 독점하는 중앙집중형 플랫폼 기반의 거대 기업을 만들었는데 블록체인 기술은 탈(脫)중앙화된 플랫폼을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참여자들이 직접 거래하며, 이익을 공유하고 노력에 따른 보상을 받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블록체인이 열어가는 새로운 인터넷 세상은 우리에게 제2의 도약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2000년대 초 인터넷 기술이 도입되고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 사업이 막 시작될 무렵 싸이월드라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사업을 페이스북보다 3년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 규제로 인해 주춤하는 사이 구글, 페이스북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전 국민을 미니홈피 중독에 빠뜨렸던 싸이월드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아쉬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인이 인터넷을 통해 화상통화를 하는 스카이프(SKYPE)라는 서비스는 2003년 에스토니아 벤처기업이 개발해 8년 뒤 마이크로소프트(MS)에 85억달러에 인수되면서 에스토니아의 자랑거리가 됐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00년 다이얼패드가 인터넷 화상통화 서비스를 먼저 시작했다. 인터넷 기술이 나온 초기에 미국보다도 먼저 여러 아이디어와 기술이 나왔지만 세계 시장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인터넷 패권을 놓쳐버린 것이다.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인터넷 기술이 펼쳐 보인 새로운 세상에서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 인프라를 갖추고도 우위를 놓친 우리에게 블록체인 기반의 제2의 인터넷 시대는 신이 내린 재도약의 기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시장에서 크게 인정받던 시절이어서 인터넷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 그리 아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 조선을 비롯한 주력산업이 위기를 맞는 가운데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 혁신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다.

그런 의미에서 블록체인 인프라를 확산하고 대규모 R&D를 통해 경쟁력을 다지겠다는 목표로 구상된 과기정통부 블록체인 R&D 사업의 예타 탈락은 시급을 다투는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한 교두보 확보라는 차원에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날로그 시대의 토목공사 중심 거대 사업은 예타를 줄줄이 면제받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세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블록체인 R&D 사업의 예타 탈락을 보면서 “과연 정부가 생각하는 국가 미래 산업은 무엇이냐”던 어느 교수님의 탄식이 계속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