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 조절로 인체 면역기능 정상화하는 기술 확보…치료제 없는 패혈증·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개발에 도전"
“사람에게 발병하는 질환의 30%가량은 염증과 관련이 깊습니다. 염증을 제어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알츠하이머 치매, 패혈증 등 아직 치료제가 없는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겠습니다.”

바이오벤처 샤페론의 성승용 대표(54·사진)는 면역학 전문가다. 몸 속에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 연구논문으로 국내외에서 주목 받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인 성 대표는 염증의 근본적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2008년 창업한 회사 이름을 샤페론으로 정한 것도 이런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에서다. 프랑스어로 도와주는 사람을 뜻하는 샤페론(chaperon)은 분자생물학에서는 단백질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물질을 일컫는다. 사명 샤페론(Shaperon)은 첫 알파벳을 C에서 S로 바꿨다. 염증 같은 위험요소를 통제하는 샤페론을 만드는 회사라는 뜻이다.

성 대표는 “염증을 없애거나 통제해 인체 면역기능을 정상화하는 방식의 신개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며 “상업화에 꼭 성공해 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겠다”고 말했다.

염증 기반 치료제 가능성 열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성 대표는 박사과정 중이던 1994년 면역학자 폴리 마징거 미국 국립보건원(NIH)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한 편의 논문에 매료됐다. 인체 내에 병원체가 침입하면 면역반응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온 전통적인 면역학 개념을 깨는 인간 면역체계의 새로운 이론이었다. 우리 몸의 조직이 손상되면 세포 내에 숨어있던 위험 신호물질이 세포 밖으로 터져나와 면역반응이 시작된다는 내용이었다. KIST에서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1998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성 대표는 마징거 책임연구원이 지칭한 위험 신호물질의 존재를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성 대표는 마징거 책임연구원 연구실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하던 2001년 무렵 연구 실마리를 찾았다. 수용성이 없어 인체 내에서 잘 녹지 않는 물질이 위험 신호물질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세포가 죽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세포를 구성하는 물질의 용해도가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용성이 없는 물질끼리 덕지덕지 달라붙어 떡이 지게 되고 이것이 염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결과는 2004년 면역학 분야의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네이처 리뷰 이뮤놀로지에 실렸다. DAMPs(Damage-Associated Molecular Patterns) 이론을 정리한 세계 최초 논문이었다.

성 대표는 수용성이 없는 물질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염증 발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미쳤다. 끈적끈적한 기름덩어리를 분산시키는 비누(계면활성제) 같은 물질을 인체 내에서 찾아내면 해답이 풀릴 것이라고 봤다. 성 대표는 “인체 내에는 수십가지 계면활성제 기능을 하는 물질이 있다”며 “이 물질을 찾아내 면역 강도를 조절하면 염증과 관련 질환의 치료제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생체 내에 존재하는 계면활성제는 고농도에서는 비누처럼 작용해 기름 덩어리를 체액 내에 분산시키지만 몸에 있는 아주 미세한 농도의 계면활성제는 특정 세포 수용체와 작용해 염증 반응을 통제하도록 생체시스템이 진화해왔다"고 DAMPs 이론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창업 초기 시련 ‘톡톡’

성 대표는 논문 발표 2년만인 2006년 사람의 간에서 계면활성제 역할을 하는 물질이 염증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당시 시중에 나와있던 기존 염증 치료제에 비해 약물 효과가 확연히 뛰어났다. 이듬해 특허를 취득했다. 연구결과가 논문으로만 끝나는 게 아쉬웠던 성 대표는 임상시험까지 직접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정부 연구과제를 수주하더라도 임상비용의 절반만 지원해준다는 말에 창업을 결심했다. 2008년 10월이었다.

서울 역삼동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옮기면서 창업 자금을 마련했다. 지인들도 십시일반 돈을 보탰다. 자본금 3억원으로 샤페론을 세운 성 대표는 창업 초기 뜻밖의 난관에 부닥쳤다. 혁신적인 신약 기술이라는 확신으로 창업했지만 시장 반응이 너무 차가웠다. 쉼없이 발품을 팔며 벤처캐피털 등을 찾아다녔지만 자금 지원을 해주겠다는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생 의학 이론에 기반하다보니 눈여겨보는 투자자가 없었다”며 “정부 연구용역과제를 수주받아 가까스로 필요한 기초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창업 8년차였던 2016년 4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자금에 숨통이 트였다. 바이오 투자 열풍이 거셌던데다 성 대표의 DAMPs 이론이 면역학 주요 참고서적과 해외 과학자들의 논문에 1000여 차례 인용되는 등 샤페론의 신약 개발 기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었다. 지난해에는 150억원의 투자를 추가로 받아 임상에 탄력을 받게 됐다.

아토피 치료제 개발에 역량 집중

샤페론의 주력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은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HY209)다. 염증 세포 표면의 특정 수용체에 작용해 아토피 환자의 피부 염증을 치료한다. 몸 안에 있는 염증 유발 위험물질(DAMPs)에 기반한 세계 최초 염증 치료 물질이다. 바르는 치료제인 HY209는 경증 또는 중간단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리제네론 ‘듀피젠트’, 화이자 ‘유크리사’ 등 아토피 신약 가운데 유크리사가 경쟁 약물이다. 주사제인 듀피젠트는 중증환자용 치료제다.

임상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실시한 임상 1상을 마무리하고 임상 2상를 준비 중이다. 올 하반기 임상 2상에 들어가고 내년 중으로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이전하거나 임상 3상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대로라면 2~3년 뒤 상업화 단계에 진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성 대표는 “아토피 치료제의 글로벌 출시를 앞당기기 위해 임상 2상을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HY209의 강점으로는 뛰어난 가성비를 꼽았다. 효능은 뛰어나면서 생산단가는 크게 낮다는 것이다. 성 대표는 “쥐 실험에서 90% 이상이 호전되는 등 경쟁 약물인 유크리사보다 효능이 현격하게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튜브당 70만원 선인 유크리사 가격보다 훨씬 낮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양산 기술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샤페론은 HY209의 임상 2상이 마무리되면 다국적 제약사 등에 기술이전도 계획하고 있다. 성 대표는 “임상 3상은 수백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자본력이 탄탄한 대형 제약사와 공동 개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 기관인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 45억7500만 달러(약 5조1000억원)였던 전 세계 아토피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4년 73억 달러(8조2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치매·패혈증 등으로 영역 확장

샤페론은 HY209의 치료 분야를 알츠하이머 치매, 궤양성 대장염, 패혈증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동물실험도 마쳤다. 이들 질환은 아토피처럼 염증 때문에 생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균이 피에 들어가 발병하는 패혈증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중환자 등에 많이 생긴다. 매년 2000만~3000만명의 환자가 발생하지만 아직 치료제가 없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수용성이 없는 베타아밀로이드 주위에 생긴 염증이 신경세포를 줄이고 이 때문에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베타아밀로이드 생성을 차단하거나 분해를 촉진하는 치매 치료제 개발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최근에는 뇌 염증 제어 쪽으로 치료제 개발의 방향을 틀고 있는 추세다.

샤페론은 패혈증 치료제는 주사제로, 알츠하이머 치료제와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는 알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패혈증치료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1상 허가를 받은 것을 수정해 3월 중 다시 서류를 제출할 예정이다.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는 오는 9월께 임상 허가 신청을 낼 계획이다. 현재 임상에 쓸 시약을 만들어 안정성 테스트를 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는 내년 1월께 임상 1상 승인 신청을 낼 계획이다.

성 대표는 “기존 염증 치료제는 한가지 기전만 억제해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HY209는 체내 복잡한 염증 기전을 여러 경로에서 동시에 억제하기 때문에 다양한 염증 질환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며 “욕창, 화상, 염증성 우울증, 관절염 등 염증성 질환으로 파이프라인을 더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신개념 항암 기술 확보

샤페론의 또다른 승부처는 항암제다. 기존 항체에 비해 유효성, 면역원성, 안전성을 개선한 항암 항체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낙타과 동물에서 추출한 나노바디 항체를 쓴다. 나노바디는 차세대 치료제 플랫폼으로 최근 뜨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가 나노바디 기반의 신약을 개발 중인 벨기에 바이오 벤처기업 에이블링스를 지난해 39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나노바디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나노바디는 기존 항체 대비 장점이 많다. 아미노산 구조가 사람과 비슷한데다 항암제를 나노바디에 결합해도 수용성이 나빠지지 않는다. 성 대표는 “기존 항체-항암제 결합 제형은 암세포에 들어가 독을 터뜨리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항체-항암제 제형이 엉겨붙어 전신염증을 일으킨다”며 “나노바디는 수용성이 뛰어나 항암제를 붙여도 서로 엉켜붙지 않는다”고 했다.

샤페론은 독성 및 약리 검사 등을 거쳐 1~2년 뒤 임상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에이블링스가 인체 투여 승인을 받은 만큼 나노바디-항암제 결합제형의 개발 속도를 높여 시장 선점을 할 수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성 대표는 나노바디 연구에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초창기에는 실험용 낙타가 없어 삼성에버랜드에서 낙타 피를 얻어 연구했다. 2014년 10월 강원도 홍천에 서울대 시스템면역의학연구소를 세우면서 연구를 본격화했다. 이곳은 낙타과 동물인 알파카 네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실험용 쥐도 2만 마리까지 키울 수 있다. 성 대표는 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고 최근까지 연구소장을 지냈다.

“의대 후배들에 롤모델 되겠다”

성 대표는 평소 제자나 후배들에게 창업을 권유한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연구결과가 논문으로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매년 20조원 안팎인 국가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이 논문만 쓰고 마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며 “연구성과가 산업화되도록 역할을 하는 게 연구자가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했다.

실제 연구 현장에서 산업화 노력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그는 “서울대 의대에서만 한해 3500여편의 논문이 나오지만 특허와 산업화로 연결되는 것은 많지 않다”며 “연구자들이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특허 등록을 통해 제약사 등이 사업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아 일정기간 독점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수백억원이 필요한 신약 개발에 제약사들이 투자하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성 대표는 기초의학자들의 창업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향후 기초 의학 연구 분야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는 의대 졸업생들에게 샤페론이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우수 인력은 의대에 집중되는 데 이들은 대부분 병원에 종사한다"며 "이들이 신약과 의료기기 등 수출형 국가산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했다.

샤페론은 2020년 말 코스닥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아토피 치료제 임상이 끝나는 시점이다. 직원은 15명이다. 80%인 12명이 연구원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