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경제부장
[정종태의 데스크 시각] '소주성'이 분배참사를 막았다고?

소득 양극화가 역대 최악으로 벌어진 통계청 발표가 지난달 나왔을 때 청와대 핵심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정책을 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더 참담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 소득주도성장이 이를 막았다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역효과로 빈곤층이 더 가난해지고 있다는 세간의 분석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진단이다. 더구나 이 말이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아니라 ‘늘공(늘 공무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아찔했다. 수십 년간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조율해온 직업 관료가 현실 인식이 이 정도이니, 어공 참모들은 오죽할 것이며 이런 참모들의 보고를 받는 대통령은 또 어떨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분배 악화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자 청와대 참모는 물론 여당 지도부, 경제 장관들까지 일제히 나서 방어하기에 바쁘다. 이들의 논리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인구 구조적인 문제, 통계 작성 방식 변경, 기저효과 등이다. 심지어 전체 가계소득은 늘고 있다는 반론까지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분배악화 본질은 외면한 채…

첫 번째, 인구 구조적 문제. 1분위(소득하위 20%) 가구 소득 감소에 대해 “가난한 노인 가구가 늘어 1분위 40% 이상을 차지한 게 가장 큰 이유”(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라는 주장이다. 1분위 소득 감소가 정책 영향과는 무관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듯하다. 노인 빈곤이 소득격차를 키우는 요인인 것은 일부 맞다. 하지만 노인 빈곤 역시 정책의 결과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고령자들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영향도 무시하기 어렵다. 더구나 1분위 소득 감소에는 또 다른 숨은 이유가 있다. 2분위(소득하위 20~40%)에 있던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다 소비침체 등의 여파로 수입이 줄면서 대거 1분위 빈곤층으로 전락해 소득 감소폭을 키웠다.

두 번째, 통계 작성 방식 변경. “가계소득 조사 대상 샘플이 달라져 통계에 문제가 생겼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는 것인데, 이는 작년 1분기 분배지표가 악화된 이후 줄곧 내놓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미 2017년부터 가계소득 조사는 가장 최근의 인구통계(2015년)를 반영해 표본을 바꿔왔다. 2018년 수치가 시계열상 의미가 떨어진다는 건 억지 주장이라는 게 당시 통계 방식을 바꾼 유경준 전 통계청장의 설명이다. 물론 분기별 지표는 단위 기간이 짧아 추세적 정확도가 떨어지는 측면은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당초 참고 자료로만 삼으려 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효과를 입증해 보이겠다며 발표를 강행해 제 발등을 찍은 게 지금 정부다.

불리한 것에는 눈감는 건가?

세 번째, 기저효과. 악화된 지표가 나올 때마다 툭하면 내놓는 답변이다. 통계상 기저효과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저효과를 주요인으로 들먹이는 건 정책을 펴는 당국자들이 할 말은 아니다. 정책이란 것이 기저효과를 최소화하라고 있는 게 아닌가.

“전체 가계소득은 늘고 있다”(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는 주장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어쨌든 가계소득은 느니까 좋은 것 아니냐는 얘긴데, 경제는 성장하는데 가계소득이 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지표 악화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언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거꾸로 자문해볼 일이다. 유리한 것만 보고 불리한 것에는 눈 감고 있는 건 아닌지.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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