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의 중요한 분수령이던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이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결렬됐다. 업무오찬, 합의문 서명식 등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두 정상이 급히 회의장에서 철수하는 장면은 충격적 결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회담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았다”고 밝혀 비핵화 협상은 당분간 ‘시계 제로’로 빠져든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담에 이은 두 번째 만남인 데다, 두 정상의 국내 정치적 입지 등을 볼 때 합의 도출이 유력했지만 결과는 참담할 정도다. 두 지도자의 튀는 행보를 감안하더라도 정상 외교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이제 결과를 보여줄 때가 왔다”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오후 들어 돌변한 것은 ‘영변핵 +α’라는 이른바 ‘빅딜’은커녕 ‘스몰딜’에도 못 미칠 만큼 양측의 견해차가 컸다는 방증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지만, 외교적 수사임을 감안하면 큰 진통은 불가피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돌아보면 회담 개최 전부터 이상기류가 많았다. 미국은 “비핵화 없이 제재완화는 없다”던 데서 “결정적 조치가 있으면 완화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꾸더니, 회담 당일에는 ‘조치’ 얘기는 사라지고 제재 완화설만 무성했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가 당연한 의제여야 하는데도, 제재 완화니 종전선언이니 하는 말만 부각된 점도 수상했다. 급기야 ‘비핵화 정의’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1차 회담에서 4개 항의 ‘비핵화 합의서’에 직접 서명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회담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진행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 의회에서는 “북의 의도에 당하는 것”이라며 막판까지 회담 취소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은 1차적으로 북한의 이중성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변 핵시설이 대규모지만 이것만 해체하는 것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가 아니며, 고농축 우라늄이나 기타 시설 해체가 필요했다”는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영변 핵시설은 과거 두 차례 불능 조치와 ‘폭파 쇼’까지 있었지만 여전히 건재한데, 이것만으로 비핵화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변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의 지명까지 언론에 오르내리는 상황이지 않은가. ‘북한 비핵화’ 대신 굳이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반복하며 유엔군사령부 지위를 위협하는 등의 행태도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모험주의적 태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회담 일정과 장소가 잡힐 때부터 상식 밖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실무 협상에서 가닥을 잡은 뒤 정상회담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날짜와 장소부터 덜컥 발표했다.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때도 똑같은 행태를 보이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김정은에게 안겨주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 것이다.

아직 대화의 문이 닫힌 것은 아닌 만큼 섣부른 예단을 앞세워 비관론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비핵화가 없으면 제재 완화도 없다’는 미국의 일관된 의사를 북한에 명확하게 재확인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대목이다.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와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배드 딜(나쁜 합의)보다는 노 딜(무합의)이 낫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것처럼 결과적으로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先)제재 완화’ 움직임을 주도한 우리 정부의 판단 착오부터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경제 제재 때문에 ‘고난의 행군’이 재연될 우려가 있을 만큼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게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진단이다. 경제 제재가 북한을 압박해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유효한 협상카드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미국 등 국제사회의 공조를 무너뜨리는 성급한 제재 해제와 ‘신한반도 체제’를 언급하며 북한의 기대만 키운 점은 중대한 실책이다. ‘한반도의 운전자’라는 정부가 협상을 어디로 몰고 가는 건지 의문스럽다. 최대 압박으로 돌아가 누수를 막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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