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15)] 정상회담의 明과 暗
1959년 7월 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무역박람회. 미국 전시관 내 주방에서 리처드 닉슨 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체제 논쟁을 벌였다. 흐루쇼프는 미국 의회에서 갓 통과된 ‘공산주의의 포로가 된 국가 결의(Captive Nations Resolution)’에 항의하며 외쳤다. “이 결의는 냄새가 나요. 새로 싼 말똥 냄새요. 말똥보다 더 독한 냄새는 없을 거요.” 닉슨이 대꾸했다. “서기장이 잘못 아셨소. 돼지똥이 훨씬 독해요.” 유명한 ‘부엌논쟁’이다. 냉전시대 정치 지도자들이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회담 사례로 꼽힌다.

정상회담 전성시대다. 청동기시대 이후부터 비슷한 형태의 회담은 있었다. 그러나 안전 문제와 실패할 경우 체면 손상 때문에 정상들은 회담을 기피했다. 정상회담이 공식적으로 부활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학자들은 교통·통신의 발달과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 지역기구의 창설이 정상회담을 촉진했다고 본다. “외교는 너무 중요해서 외교관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도 늘었다. 글로벌 무대의 중요 행위자로서 국익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유권자에게 각인시킬 기회를 정치인들은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다. 1950년 초 에든버러에서 연설하면서 ‘정상에서의 회담(parley at the summit)’이라는 등산 용어를 외교에 적용했다. 이 용어는 언론에 의해 널리 퍼졌고 오늘날 주요 외교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최종법원' 기능하는 정상회담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15)] 정상회담의 明과 暗
정상회담은 직업외교관에 의한 외교에 비해 장점이 많다. 우선, 쟁점 이슈의 일괄타결을 쉽게 한다.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데도 유용하다.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정상들은 자신의 권위와 안목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소위 정상회담의 ‘최종 법원’ 기능이다. 단점도 있다. 정상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세부사항을 모르며 성과에 집착한다. 실패 가능성에 직면하면 협상을 서둘러 깨거나 성공하기 위해 무리하게 양보하기 쉽다. 따라서 중대한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고 한 번 저지른 실수는 변경하기 어렵다.

“정상회담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외교가에 회자되는 말이다. 실패했을 시 입을 정치적 타격 때문에 어느 정도 입장이 조율됐을 경우에만 추진되며 사전 준비에 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의 성공 조건으로 아래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전략적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협상을 위한 모든 계획과 행동은 오직 목표 달성에 집중돼야 한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흐루쇼프 서기장의 회담은 실패 사례로 꼽힌다. 회담 실패는 이듬해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졌다. 회담 중 양국 지도자는 선거 이야기를 하거나 쓸모없는 체제논쟁을 함으로써 모호한 결과를 낳았다.

둘째, 정상 간 어느 정도 신뢰가 있어야 한다. 1992년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을 80번 이상 만났다고 말했다. 처칠 총리는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확보하기 위해 2000통이나 되는 전보와 편지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모두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이다. 2001년 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회담했다. 기자회견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부시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콜게이트 치약을 사용합니다.” 이후 회담은 ‘콜게이트 회담’으로 알려졌다.

美·北 실질적 진전 보여야 할 때

셋째, 철저히 준비해야 하며 우방국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1938년 뮌헨회담 후 “우리 시대의 평화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는 곧바로 폴란드를 침공했고 체임벌린의 이름은 비겁함과 무책임의 상징이 됐다. 그는 사전 준비에 소홀했다. 직업 외교관들의 조언을 무시했고 통역과 기록원도 대동하지 않았다. 1972년 닉슨과 마오쩌둥의 회담은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핑퐁외교’로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고 키신저-저우언라이 간 비밀협상을 통해 의제를 사전 조율했다.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결과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우선, 양 정상 간에는 신뢰가 결여돼 있다. 사전 준비도 부족하다. 스티븐 비건 대표와 김혁철 대표 간 실무협상으로는 의제 조율과 발표문 협의조차 벅찼을 것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신의 전략 목표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정치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는 트럼프는 북핵 문제에서 외교적 성과가 절실하다. 김정은은 체제보장과 함께 경제제재의 해제가 긴요하다. 우려 속에서도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이유다.

정상회담은 역사를 만들고 세계를 움직인다. 이번 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안보, 나아가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