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신뢰 부재, 중국 경제 발전의 걸림돌
중국 베이징의 교통체증은 악명 높다. 2000만 명 이상이 몰려 사는 도시에 지하철 노선이 성기다 보니 도심 정체는 출퇴근 시각을 가리지 않고 만성적이다. 차량이 밀리는 것보다 더 불쾌지수를 높이는 것은 무질서와 얌체운전이다.

차량이 몰리는 교차로엔 어김없이 차로 표지와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끼어드는 운전자가 나타난다. 앞에 있는 차가 끼어들기에 성공하면, 그 뒤편엔 어김없이 새치기 차로가 하나 생겨난다. 교통경찰이 서 있는데도 꼬리물기가 다반사로 벌어진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보험사 직원이 달려올 때까지 차로를 막아버린다. 경적 소리가 베이징 도심의 데시벨을 높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양보운전의 미덕은 ‘나도 급할 때 먼저 갈 수 있다’는 상호신뢰가 있어야 발휘되는 법이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이런 분위기에서 양보란 신용재는 성장하기 어렵다. 신용과 신뢰가 드문 교통문화에선 아무리 독일 명차를 몰아도 운전은 고역이며 비용이다.

중국 관공서에서 인허가 신청을 해본 외국 기업인이라면, 그들이 요구하는 서식의 종류와 ‘엄밀함’에 황당할 때가 많다. 대개 중국어로 쓰인 공증을 거쳐야 하는 데다 한 글자의 표기라도 어긋나면 결격사유가 된다. 예를 들어 ‘주식회사’ 같은 회사 끝 이름도 ‘(주)’로 약식 표기했다간 반려되곤 한다.

수없이 많은 문서위조 사례가 행정처리를 이렇게 하도록 부추겼을 것이다. 전기차 시제품을 조립해놓고 수억원대의 보조금을 타냈다가 적발된 것이 불과 3년 전 일이다. 하지만 벽창호 같은 행정 절차 탓에 무수히 많은 선의의 기업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저(低) 신뢰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중국의 신용카드 발급은 1인당 0.4장 정도에 그치고 있다(2017년 기준).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지 못한 것은 기업 및 개인 신용을 판별할 데이터가 쌓이지 못하고, 그것조차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핀테크가 결제 속도를 높였지만, 예치한 돈에서 꺼내 쓰는 직불(直拂)의 속성은 그대로다. 신용이 쌓여야 소비자 금융이 활성화되고, 소비의 성장기여도도 올라갈 것이다. 소비 주도 경제로 가려면 이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

수교 40주년을 맞은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국제 신용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미국이 총부리를 겨눴던 중국과 수교한 것은 냉전 라이벌인 소련을 견제하려는 포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후 오랫동안 경제 및 군사적 자립을 지원해온 것은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평화적으로 굴기할 것이다” 등 덩샤오핑 이래 대를 이어온 공산당 지도자들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이 신뢰에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이 궁지에 처했을 때 중국 지도자들이 미 달러 기반 기축통화체제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다. 이후 시진핑 체제 들어 중국이 남중국해 도서에 군용기 활주로를 닦고 항공모함을 취역하고 우주전쟁 역량마저 키우기 시작하자 미국 내 친중파는 마침내 자취를 감췄다. 요즘엔 “나도 속았다”는 미국 사회 지식인들의 반성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신뢰가 무너진 뒤 첫 응징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관세 하나만으로 중국 경제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다가올 미·중 정상담판이 어떤 식으로 갈등을 봉합하든 중국이 앞으로 치르게 될 경제·군사·문화적 비용은 천문학적일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