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데스크 시각] 증권사 사장도 기업가 아닙니까?
“한국에선 기업가 하면 큰 제조업체 사장이나 벤처 창업가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요즘은 증권사 사장들도 기업가예요.”

얼마 전 만난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의 말이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형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키우고, 새로운 금융 기법을 개발해 활용하는 증권사 사장들도 기업가로 봐야 한다는 게 권 회장의 설명이다. 권 회장의 말엔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10년간 달라진 금융투자업계의 모습이 반영돼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 직전인 2008년 31조원이던 국내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은 작년 말 56조원으로 증가했다. 5대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은 평균 2조3000억원에서 5조3000억원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증권사 순영업수익에서 위탁매매(브로커리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에서 40% 수준으로 줄었고, 투자은행(IB)과 상품운용 부문이 급증했다.

덩치 불린 금융투자회사

덩치가 커진 증권사들은 해외 인프라 등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증권·운용사 컨소시엄이 지난해 1조5000억원에 달하는 프랑스 덩케르크 LNG터미널 지분 75%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골드만삭스가 우버에 투자하듯, 미래에셋은 네이버와 공동펀드를 조성해 동남아시아의 그랩 등 국내외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증권사 수익이 여전히 증시에 민감하긴 하지만 대형사일수록 시황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 자본시장법 도입 당시 내걸었던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탄생이 요원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증권사들이 그 방향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증권가엔 기업가 정신이 싹텄고, 모험적 투자도 이뤄졌다.

기업가 정신과 함께 증권인들에게 부여된 또 하나의 미션이 있다. 국민의 자산 증식이다. 금융과 실물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산업이 변화하면 금융도 달라진다. 공장 등 담보가 될 유형자산이 많은 제조업 중심 경제에선 은행 대출이 기업 자금 공급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술이나 브랜드가 부각되는 무형자산 시대엔 자본시장의 역할이 커진다.

커지는 자본시장의 역할

이는 국민의 노후 대비 자산관리 변화와도 연결된다. 은행 금리가 연 7%를 넘었을 땐 예금으로 돈을 불리고, 노후에도 이자로 먹고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금 떼고 연 1~2%대 이자로는 어렵다. 다양한 투자상품이 필요해진 이유다.

안타깝게도 지난 10년간 자본시장에 대한 금융 소비자들의 불신은 더 커진 듯하다. 증권사 직원의 권유로 퇴직금을 펀드에 넣었다가 큰 손실을 보고 펀드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은퇴자, 마이너스로 떨어진 퇴직연금 수익률에 ‘어차피 장기투자,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애써 불안을 잠재우는 직장인 등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창의적 상품이 나오기 어려운 각종 규제와 후진적 세제, 고객 수익이 아닌 실적 위주의 금융사 영업행태 등 여러 가지가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문제를 안다면 답을 찾아야 한다. 때마침 증권거래세 단계적 폐지와 금융상품 통합과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금융투자협회는 이번주 ‘자산운용업 비전 2030’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와 여당이 자본시장 개혁에 관심을 보이면서 실질적 변화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10년 뒤엔 증권사 사장이 ‘국민 자산관리자’라는 얘기도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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