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금융사 탈출 본격화한 런던
'패스포팅 권리' 못 얻으면 타격
'동등성'에 대한 협상이 관건"

배리 아이컨그린 < 美 UC버클리 교수 >
[해외논단] 英 런던은 '금융 허브'로 남을 수 있을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를 한 지 3년이 흘렀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말 영국 의회는 런던이 금융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 JP모간, 모건스탠리, 씨티그룹은 3000억달러(약 338조원)의 자산을 런던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옮겼다. 바클레이즈는 2150억달러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기는 것을 승인받았다. BNP파리바, 크레디아그리콜, 소시에테제네랄은 직원 500명을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이동시켰다.

‘포스트브렉시트’ 체제의 불확실성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영국 은행들이 EU 회원국 한 곳에서 사업인가를 받으면 다른 EU 국가에서도 영업할 수 있는 패스포팅 권리(passporting right)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을 갖고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EU는 비EU 회원국 가운데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 아이슬란드 등 유럽경제지역(EEA)에 속한 3개국에만 패스포팅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EEA 회원국은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지고 있다. 회원국들은 EU 금융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분쟁이 발생하면 EEA 회원국은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EEA 회원국들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재판소를 따로 두고 있다. 3개 EEA 회원국뿐만 아니라 스위스도 관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EFTA 재판소가 ECJ의 결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EU와 영국처럼 하나가 나머지 하나보다 훨씬 큰 두 경제 권역에서 시장 접근에 대한 이견이 있을 때도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측 가능하다. 문제는 이 같은 조정으론 브렉시트 강경론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EU와 비회원국은 서로 ‘동등하다(equivalent)’고 간주한다. 달리 더 나은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회원국 은행은 EU의 규제를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만 EU 회원국의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즉 EU의 규제를 따를 때에만 ‘동등성’이 적용된다. EU는 비회원국의 규제가 EU와 동등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부문의 영업과 관련해 인허가 절차를 면제해준다.

동등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런던의 금융 중심지로서의 지위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광범위하게 제공할 때 누릴 수 있는 ‘범위의 경제’는 금융 중심지를 만드는 핵심이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이미 사업과 직원을 런던 밖으로 옮기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런던의 강점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런던은 18세기에 국제 금융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회계사, 변호사, 컨설턴트 등 다양한 지원 서비스 생태계가 은행을 중심으로 자라났다. 이를 토대로 런던은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이 됐다. 또 금융 거래가 전산화하면서 톰슨로이터 등 데이터서비스, 전자중개시스템(EBS) 서버와 전자거래 정보가 흐르는 광섬유 케이블의 허브가 됐다. 1999년 이후엔 유로화 표시 청구권 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대형 은행은 파리와 프랑크푸르트로 직원을 옮기고 있지만 이들 도시가 런던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런던이 중요한 금융 중심지로 남을 수 있을지는 동등성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물론 런던에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는 따로 있다. 브렉시트를 취소하는 것이다. 런던엔 여전히 법률과 컨설팅 등 지원서비스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은행들이 일자리와 자산을 유럽대륙으로 서둘러 옮기던 발걸음을 되돌리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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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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