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장기실업자, 신규실업자
취업자라고 해서 다 같은 근로자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제일 ‘아래쪽’을 단순 알바(아르바이트)로 본다면 그 다음은 인턴이다. 인턴에도 최근 공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는 ‘체험형’이 있는가 하면 청년들이 선호하는 기업의 ‘채용형’도 있다. 인턴과 정규직 사이에는 복잡다단한 비정규직 지대가 있다. 기간제, 파트타임, 파견직 등 다양한 형태의 계약직이 있다.

정규직이 고용시장의 최강자겠지만 여기에서도 계급은 세분화된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쪽 임금이 1.7배 많고, 양대 노총이 버티는 공기업으로 가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 있다. 고대 신라의 골품(骨品)제나 인도의 계급서열 카스트에 빗대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런 불합리한 신분화도 따지고 보면 유연성 없는 친노조 성향의 고용제도와 관행에 닿아 있다.

실업자 쪽을 보는 데도 취업자만큼이나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무엇보다 장기와 신규(단기)로 보는 게 기본적이다. 법규로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통계청은 실업 기간을 3, 6, 12개월로 나눠 집계한다. 통상 구직기간이 3개월 미만이면 신규실업자, 6개월 이상이면 장기실업자로 본다. 고용보험에 따른 실업급여를 최장 8개월간 지급하는 것도 여기에 연결돼 있다.

연구나 정책 입안에서 볼 때 실업 종류는 더 다양해진다. 수요 부족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비자발적 실업자가 늘어난다. 일자리는 있으나 임금수준이 낮아 취업을 피하면 자발적 실업이 된다. 농수산업 건설업에는 계절적 실업도 상존한다.

불황기에는 근로자가 가진 기능을 발휘할 기회가 줄게 돼 잠재 실업이 증가한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대량 해고는 구조적 실업이란 개념으로 연구됐다. 근래 전환기의 한국 조선업계처럼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서의 한시적 실업, 곧 마찰적 실업도 종종 생긴다. 저성장이 장기화되면 통계에서도 빠지는 구직단념자(실망 실업자)가 증가해 사회적 부담이 된다.

어느 쪽이든 실업은 재앙이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탈(脫)가족 한국 사회에서는 더하다. 지난달 장기실업자가 15만5000명으로 19년 만에 제일 많았다. 신규실업자도 근 9년 만에 가장 많이 늘었다. 고용·실업 통계에 악성 수치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현 정부 들어 일자리 예산으로 54조원을 퍼부었는데도 왜 이 모양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6개월은커녕 한두 달만 월급이 끊겨도 마이너스 통장에 기대는 게 서민 가계다. 실업보험을 확대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더 이상 세금을 동원하는 관제 일자리로는 안 된다. ‘최고 복지는 일자리’ ‘좋은 일자리 만드는 곳은 기업과 시장’ ‘최선의 실업 대책은 경제성장’. 이제는 진부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런 진리를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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