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3년차 '망치증후군' 갇혀
증상에 맞는 도구 대신 망치질뿐
성찰과 시스템 개혁 不在가 적폐"

오형규 논설위원
[오형규 칼럼]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말이란 기록은 없다. 최초 언급자는 1964년 ‘도구의 법칙’을 제시한 미국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이다. 캐플런은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것이다”고 했다. 현재 버전은 심리학자 매슬로가 《심리학》(1966)에서 언급한 ‘망치의 법칙’ 또는 ‘매슬로의 황금망치’에서 왔다.

누가 원조든 ‘망치의 법칙’이 세상의 진실인 것은 분명하다. 누구나 망치를 쥐면 본능적으로 두드릴 대상부터 찾는다. 문제는 국가를 경영하는 권력집단이 망치질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1호 슬로건인 ‘적폐청산’이 3년차를 맞으며 ‘망치 증후군’이 점점 또렷해진다. 무엇보다 검찰이란 초대형 해머는 ‘교도소에 내각을 구성할 정도’일 만큼 ‘전과(戰果)’가 혁혁하다. 아직도 ‘사법농단’ ‘생활적폐’ 등 손볼 대상이 수두룩해 5년 내내 달릴 기세다. 정권 초 반짝했던 ‘검찰 개혁’ 목소리는 쏙 들어가고 현란한 망치질 솜씨만 남았다.

경제 분야라고 다르지 않다. 주력산업의 몰락과 수출 부진 속에 앞이 안 보이는데 대기업 손발 묶는 ‘망치 입법’이 수두룩하다. 한진과 오너일가는 ‘물컵 갑질’ 이후 6개월간 검찰 경찰 국토부 공정위 국세청 관세청 등 11개 국가기관에 의해 압수수색 18회, 포토라인 14회, 구속영장 5회의 전무후무한 고난을 겪었다. 도덕적 비난거리도 ‘국민정서’에 따라 징벌 대상이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것도 모자라 집사(스튜어드십) 역할을 내건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 1호 타깃이 됐다. 국민 노후 쌈짓돈까지 정권의 망치가 된 판이다.

‘일진’들의 학교 폭력이 그렇듯, 때리는 쪽은 대개 몇 대 툭툭 쳤다고 한다. 그러나 맞는 쪽에선 표도르의 ‘해머 파운딩’을 좌우 연타로 얻어맞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디지털 포렌식과 별건(別件)수사라는 검찰의 망치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압수수색을 20회나 당해본 삼성이 견디는 비결을 적지 않은 기업이 수소문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경제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정책도 쇠망치처럼 시장을 때린다. 참담한 경제·일자리 지표에도 ‘소득주도 성장(최저임금), 주52시간 근로, 탈(脫)원전’은 후퇴불가의 ‘3불(不)’이다. 여당 대표가 “경제위기론은 수구우파의 음모”라는 판이니 앞으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문 대통령이 어제 “최저임금 결정 때 자영업자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했건만, 곧이곧대로 듣는 자영업자가 없다. 2년간 30% 뛰어 그로기 상태인데 무슨 소용일까 싶다. 획일적 주52시간 근로제가 ‘IT강국’의 경쟁력을 허물고, 탈원전이 세계 최고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려도 ‘정권의 대표브랜드’는 변함 없을 것이다.

국정에는 망치로 두드릴 게 있고, 핀셋으로 정확히 집어낼 것도 있는 법이다. 망치질 잘못했다간 자기 손을 찧거나 주변을 엉망으로 만든다. ‘사법농단’ 철퇴가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게 그런 예다.

집권은 온갖 도구가 든 연장통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수술이 필요한 국가·사회의 난제들마다 적절한 도구를 써야 한다. 그러나 대개는 길고 지루한 인내가 요구돼 제쳐놓고 당장 손쉽고, 요란하고, 파장이 큰 망치질에 몰두한다. 정밀수술 할 곳, 잘라낼 곳, 이어붙일 곳, 채울 곳, 키울 곳에까지 망치질을 해대면 어떻게 되겠나. 정권마다 개혁을 외치면서도 인적 청산에 그치고, 깊은 성찰과 시스템 개혁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게 진짜 적폐다.

‘나라다운 나라’가 되려면 특권과 지대추구부터 근절해야 할 텐데, 시장과 기업을 때리는 게 개혁인 줄 안다. 이념은 넘치는데 철학이 없고, 목표는 있는데 비전이 없다. “모두가 정치화해 누가 집권해도 이끌 수 없는 나라가 돼간다”(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는 비관론을 점점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소득 3만달러 초입에서 갈 곳을 잃었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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