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란 '나비 날갯짓'
지난 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한진칼에 대해 최소한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대한항공에 대해 ‘비(非)경영 참여적 주주권 행사’를 의결했다. 나비의 날갯짓은 폭풍우를 가져올 수 있다. 연금사회주의가 그것이다.

국민연금의 한진그룹에 대한 의결권 행사의 뿌리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다. 재벌 3세의 신중하지도, 사려 깊지도 않은 행동에 내려진 징벌은 도덕적 비난과 대한항공의 이미지 실추일 것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층위(層位)가 다른 문제다. 도덕적 비난과 법적 처벌은 ‘공적 영역’이지만 주주총회는 이해관계자의 ‘사적자치 영역’이다. 이해관계자인 주주 외 ‘제3자 관여’는 범주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에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원칙)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언명했다. 기업의 탈법과 위법이 있으면 ‘법의 잣대’를 대면 된다.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은 국민연금에 기업을 상대로 의결권을 행사해달라고 위임한 적이 없다. 그랬다면 국민은 수탁자인 국민연금에 위임 내용을 제한·변경하거나 수탁자를 해임할 수 있어야 한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국민연금의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역할을 자임한 ‘셀프 도입’이다.

스튜어드십코드의 원조는 2010년 7월 발표한 ‘영국 SC(The UK Stewardship Code)’다.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은 금융위기 발발을 막지 못하고 일조(一助)한 데 대한 기관투자가의 ‘반성’에서 출발했다. 금융감독당국의 강력한 제재를 피하기 위해 기관투자가들이 책임투자자로서의 자율규범을 마련한 것이다. 기관투자가의 자발적·선제적 대응이 스튜어드십코드 제정 이면의 논리다. 영국에서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공적 연기금을 1차적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 공적 연기금의 행동규율로 오인(誤認)하고 있다. 아전인수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손’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2017년 현재 131조원으로 전체 비중은 6.96%다. 5%(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 276개(96개)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가 반(反)재벌정서와 결합하면 재벌개혁 등 정치적 목적의 관치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땅콩 회항, 물컵 투척 등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로 크게 훼손된 주주가치를 복원하기 위해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금운용위원회의 판단이다. 그런데 ‘오너 일가의 갑질에 의한 기업가치 하락’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기업가치는 주가에 반영된다. 만약 갑질로 기업가치가 훼손됐다면 갑질한 날을 기준일로 이후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가가 하락하고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조현아 땅콩 회항(2014년 12월 5일)과 조현민의 물컵 투척(2018년 4월 15일) ‘사건일’을 기준으로 이후의 주가 흐름을 분석하면 갑질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을 특정할 수 없다. 국제회계기준(IFRS 연결)으로 2017년, 2018년 대한항공의 매출액총이익률과 영업이익률은 아시아나항공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갑질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주장은 논거가 결여된 ‘그렇게 믿고 싶은 예단’인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해당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는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8년 국민연금 수익률은 -1.5%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기금운용위 구성부터 그렇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의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단순한 기관투자가가 아니라 주주로 위장한 이해관계자다. 일본의 국민연금 격인 일본 공적연기금(GPIF)은 직접 주식을 보유하지 않으며, 주식 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100% 민간 위탁운용사에 맡긴다. 우리는 국민연금 적립금을 국가의 쌈짓돈으로 착각하고 있다. 정부 손에 칼을 쥐여준 셈이다.

dkch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