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혁신기술을 지닌 벤처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책위를 이끌던 김태년 전 의장이 한 말과 똑같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제2 벤처 붐’을 말하는 여당이 벤처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면 지금쯤 손에 잡히는 결과를 내놔야지, 언제까지 ‘추진’이란 말만 반복할 것인지 답답하다.

차등의결권은 기업이 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이 낮아져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벤처업계는 오래전부터 이 제도 도입을 건의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최운열 민주당 의원이 주(株)당 2~10개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후 진척이 없다. 일부 시민단체가 반발하자 여당이 눈치를 살피는 탓이다.

여당이 벤처 성장을 뒷받침하겠다면 눈여겨 살펴봐야 할 것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선진국이다. 특히 벤처가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이 좋은 사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리콘밸리 벤처를 중심으로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증자를 해도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으니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벤처가 경영권 불안 탓에 그 다음 성장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 국내 기업은 벤처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벤처 차등의결권 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바라는 이유는, 이를 통해 벤처 투자와 성장이 가시화될 경우 경영권 등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정치권의 오랜 편견도 함께 깨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든 효과를 높이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경제정책 방향을 확정하면서 규제샌드박스 도입을 약속했지만 이제서야 1호 적용사례가 나왔다. 이래서는 혁신성장이 속도를 내기 어렵다. 벤처 차등의결권 도입을 더는 미루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