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스카이 캐슬'과 청소년 우울증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장안의 화제였던 TV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입시코디네이터’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드라마 전개가 비록 과장됐다고는 하지만 우리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아 더 인기였다고 한다. 특히 드라마 속 청소년과 그 부모의 심리적 압박감은 결코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실 상황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한 고3 수험생과 부모가 가족 상담을 위해 내원했다. 부모는 너무 많이 변한 아이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다가는 아이가 비뚤어질까 두렵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워낙 성실하고 착했다고 한다. 순종적인 편이라 부모의 말을 잘 듣고, 그 흔한 반항조차 한 번 없었다. 붙임성도 좋아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미움을 사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착하고 순한 아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돌변했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들로 수다를 떨곤 했던 아이였는데, 언제부턴가 방안에 처박혀 도통 나오지 않았다. 가끔씩 학원을 빠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지각 한 번 한 적 없던 아이였다. 부모는 그저 고3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했다.

어느 날 저녁식사 시간. “이제 고3이니 힘들더라도 학원은 빠지지 말라”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갑자기 아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참을 노려보던 아이는 “제발 간섭 좀 하지 말아”라고 소리를 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소 품행이 거친 아이였다면 모르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 후로 아이의 행동이 눈에 띄게 변했다는 것이다. 달래도 보고 혼도 내보고, 함께 여행도 다녀보고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걸핏하면 학교에 안 가는 것은 물론이고 외박도 했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사사건건 부모와 부딪혔다. 심지어 부모의 행동을 간섭이라고 여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면, “도대체 왜 아들에게 관심이 없어”라며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기도 했다. 주변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자고 애원했지만 아이는 “미친놈 취급한다”며 성질부터 냈다.

손 쓸 도리가 없어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서 고통받던 부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주말 저녁, 술에 취한 아이가 자해를 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제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번에는 자진해서 정신과 상담을 받길 원했다.

아이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이들의 우울증은 성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기력이 없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불안해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 전형적인 우울증상이다. 그러나 청소년 우울증은 다른 임상적 양상을 보인다. 갑자기 이유 없이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이 된다. 전에는 안 하던 흡연 또는 음주를 하거나 가출이나 외박을 해서 마치 비행소년처럼 행동한다. 도벽이 나타날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도 나왔듯이 먹지도 않을 과자를 편의점에서 몰래 훔치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쓰거나 자해 또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평소에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혹시 전에 없이 위와 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청소년기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일찍 발견하고 서둘러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이 시기의 우울증은 치료가 비교적 잘된다는 점이다.

우리 현실에서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방법은 쉽게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우울증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의 태도다. 대학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건강한 생존과 행복한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아이를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전적으로 믿어야 할 사람은 입시코디네이터 따위가 아니고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늘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